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백 Jul 19. 2023

잘 살려면 적당히 뺀질거려야 하는거다

공기 먹는 하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어른들 말씀에는 콧방귀를 꼈고,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것이 못마땅해했다. 남들 눈치 보며 흘러가는 대로 살면 결국 후회한다는 어른들의 회한 섞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아야지 다짐했다. 사는 것에는 답이 없고 정해진 것도 없으니, 요령껏 살면 그만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 아니란 것쯤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나는 뺀질거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나의 정확한 직책은 ‘고문’이다. 회사가 크게 성장을 해도 이 직책을 바꿀 생각은 없다. 혹, 아예 직책을 버린다면 모를까. 나는 총책임자도 결정권자도 아니다. 권한은 후배들에게 다 나눠줘 버렸다. 사람들을 만날 때 ‘고문’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을 내밀면,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이냐며 반문을 하기도 한다. 결정권자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후배들에게 슬그머니 일을 떠넘겨 버린다. 다들 어릴 적부터 봐 온지라 내 성격을 알아서, 그래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편이다. 회사 일을 하나둘씩 후배들이 도맡아서 하는 부분이 늘수록 나는 요령 아닌 요령을 피우게 된다.

 특히 해외에서 수입한 물건이 컨테이너로 들어올 때면 새벽 6~7시에 일어나 물건을 직접 날라야 할 때가 있다. 나는 평소에 3~4시쯤 잠들어 오후 12시쯤 일어나는 게 보통인데, 내가 한참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하필 물건이 들어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당연히 일을 함께 해야 하니까 잠자는 시간을 조절도 해보고 바짝 긴장을 해서 일어나서 일을 했는데,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기지 못하는 게 잠인지라, 한 두 번 늦잠으로 일하는 타이밍을 놓쳐 버린 적이 있다. 그 후로 식구들이 아예 내 몫을 생각하지 않고 인력 배치를 하는 것보고 속으로 땡큐라고 생각해서 요즘은 점점 내일 물건이 들어와도 편한 마음으로 잠에 드는 경우가 늘었다. 물론 알람은 맞춰 놓고 잔다. 그런데 진짜로 못 들은 것이지 일부러 못 들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물건이 들어온 날, 중천에 뜬 해를 보고 놀라서 일어났는데, 시계를 보면 12시가 되어 있으면, 속으로 ‘아 오늘도 망했다’, 하면서도 ‘오늘도 이렇게 넘어갔네.’ 하고 안도한 적도 많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편했던 건 결코 아니라는 건 알아줬으면 한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지만 뒷심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땐 승현이와 함께 한국구조연합회로 서해 섬에 들어가서 수중정화 봉사활동을 자주 갔다. 봉사활동을 하는 취지도 좋고, 봉사활동을 성심성의껏 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초반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데 막상 가보면 인적 드문 섬에 그늘 피할 곳 하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도 나는 밤낮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 6시부터 가는 일정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 아침을 해 먹고 정오가 되어 정수리에 햇빛이 꽂히면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섬은, 우리가 배를 타고 들어간 앞쪽바다와 뒤쪽바다가 있는데, 승현이를 끌고 뒤쪽 바다 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형, 어디가? 사람들 다 여기 있는데?”

 “사람들 많은 데서 경쟁하면서 주워 봐야 뭐 해? 없는 데를 가야지.”

 승현이는 형들에게 발각되어 혼날까 봐 눈치를 보았지만, 나는 60~70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 중에, 누가 우리만 지켜보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뒤쪽 바다로 가보면 아니나 다를까 밀물에 쓸려서 올라온 폐 그물부터 페트병까지 무더기로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우리는 준비해 간 자루에 긁어오기만 하면 되니까 훨씬 더 빨랐다. 일을 빨리 마치고 그늘이 진 곳을 찾아가 한 시간을 누워서 편하게 요령 피다 돌아오면, 대장들이, 언제 이렇게 많이 주웠냐며 나와 승현이만 엄청 칭찬을 받는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승현이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     


 승현이와 나는 다이빙을 하며 수중정화 봉사도 종종 갔는데, 역시 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시간을 채워’ 일을 하는 것에는 젬병이다. 옆을 보니 승현이는 부지런히 한강의 쓰레기를 줍고 올라오고, 또 줍고 올라오고 있었다. 난 취미로 다이빙을 할 때도 산소를 한 깡 이상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한 깡을 물고 물속으로 돌아가 쓰레기가 있을 만한 곳만 수색해서 큰 쓰레기 위주로 주웠다. 자잘한 쓰레기들보다 분해되는 것이 더욱 어려운 큰 쓰레기부터 줍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머리도 어지럽고 기력이 빠져 물 밑에서 보조호흡기의 퍼지를 눌러 공기를 뺐다. ‘뽀글뽀글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공기가 쑥 빠져버렸다. 그다음에도 나는 요령껏 일을 하고 막판에 힘이 떨어지면 살짝 공기를 빼버리는 요령을 피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공기 먹는 하마’라고 불렀다. 숨을 얼마나 많이 쉬면, 산소가 이렇게 빨리 닳느냐는 것이다.

 하루는 80년대 티비를 주웠다. 콘센트 선 같은 것이 보여 잡아서 쭉 당겼더니, 어릴 적 88 올림픽 볼 때 씀 직한, 다이얼로 채널을 돌리는 방식의 티비가 끌려 나왔다. 나는 물 밖으로 올라가 20년도 넘은 티비를 건졌으니 오늘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번째 공기탱크를 지고 들어간 후에 또 한 번 선풍기를 주웠다. 이런 걸 줍다 보면 중고상에 연락 한 번만 하면 무료로도 수거해 가는데, 이렇게 한강에 다 던져 버릴 일인가 싶다. 월척을 두 번이나 한 나는 터득한 요령대로 공기를 살짝 빼고 올라갔다. 오리발을 열심히 구르며 옆구리에 쓰레기를 끼고 물 밖으로 올라간 나는 보트 위에서 내 쪽을 주시하고 있던 형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야, 뭐냐 밑에? 니 자리에서 버블이 왜 이렇게 올라와?”

 “옥토퍼스가 좀 이상해서 계속 눌렀어요.”

 “그래? 이상하네. 올라와서 장비 점검해.”

 인생은 요령과 순발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빨리 끝난 나는 옷을 벗고 배 위에 먼저 누워 있었다.

     

 나는, 성실을 무기로 살아가거나, 행동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은 되지 못하지만, 다만, 그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닌 진짜 꼭 필요한 순간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오래 쫓겨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뺀질거리는 이야기 실컷 해놓고, 마지막엔 미화 한 번 해 보는 거다.





이전 09화 시골 오니 개가 다섯 마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