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백 Oct 02. 2023

내가 아직도 게임을 하는 이유

 글을 써 보니 알겠다. 왜 책을 봐야 하는 것인지. 책 한 권에 들어가는 저자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A4 용지 두 장짜리 글 하나를 쓰는 건 쉽다. 하지만 같은 주제로 A4 용지 100장을 써서 책 한 권을 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영상이나 음성 없이 1차원적인 글로만 모든 것을 전달하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글이나 그림으로만 모든 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유튜브 영상을 하나 정도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한 주제로 꾸준히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게임은?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아무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작업물이 결코 아니다. 또한 게임 속에 다양한 의미를 녹여내고 장치들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꾸준히 게임을 하게 하는 것도 보통의 내공이 아닌 것이다. 잘 만든 한국 게임들이 전 세계를 홀리고 있다. 이건 지금만이 아니라 PC게임이라는 것이 나온 시절부터 쭉 그랬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리니지...

 대체 그 천재들은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 수가 있었던 걸까?     


 나는 게임기가 나온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게임 1세대다. 지금 40대가 되었지만, 내가 하는 게임에서는 10대들에게 지지 않는다. 게임 용어로는 ‘발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기운이 빠지고 혼자 있어야 충족이 되는 내향형이다. 내가 혼자 있을 때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이 게임이고, 머리를 식히고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게임이며, 게임을 통해 엄청난 정보와 아이디어들을 얻는다. 남자 애들은 특히 어릴 적에 했던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나 남북전쟁을 통해 지루하기만 하던 역사지식과 전쟁배경 혹은 역사 속 인물들을 배운다. 테트리스와 같은 단순 게임이 아닌 웬만한 게임들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작법도 매우 어렵고, 게임을 풀어가는 과정도 상당히 어렵다. FPS 총 게임만 해도 보통 순발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들은 배울 수도 없는 영역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40대가 되어도 아직 우리 엄마는 게임하는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나는 대신 내 아이들에게 게임을 실컷 하라고 한다. 그리고 괜찮은 게임을 내가 골라준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일은 게임 한 판이다. 배틀 그라운드가 처음 나왔을 때 딸, 아들과 함께 했는데 내 조작 실력이 애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깊이 반성한 적도 있다. 애들을 이겨 보려고 혼자 몰래 연습도 많이 했다. 애들끼리 노는데 어른이 와서 함께 껴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체육관 제자들과 함께 피시방을 간 적이 있는데 나는 내 제자들이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게임 속 유저들에게 급하게 심폐소생을 요구하거나, 구호품을 나눠 달라고 할 때. 그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에 대해 감사하고, 친구를 만들 줄을 알았다. 사이버 상에서의 이런 활동에 대해 처음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으나, 코로나19 시대를 넘긴 우리는 안다. 그때 가장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했던 것은 랜선 친구들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게임에서 종종 영감을 받는다. 그중 가장 결정적일 때는 신제품 출시 때마다 정해야 하는 패턴의 디자인, 제품명을 지을 때다. 그때 진가를 발한다. 또한 40대가 된 내가 제자들과, 어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비슷한 정신연령으로 통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걔들보다 게임을 잘하면, 아이들은 어른인 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요즘 '책따'라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따돌림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대가 변했다. 나는 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지만, 세상에 좋지 않은 책이 많다는 것도 알고, 편협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 사상들이 오히려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어차피 게임을 안 하면 술 마시고 모여서 시간을 죽일 거면서, 왜 게임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는지 모르겠다. 담배도 나쁘고 술도 나쁘지 않나. 그것들보다 나은 게 게임인데 말이다.      


 난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는 자식이 있다면, 엄마가 게임에 대해서 공부하고 한 번 정도는 함께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게임을 함께 하기 시작하면 운동도 함께 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져들기 시작하면 어른도 뒷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한 자세로 집중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게임일 것이다. 젊은 한 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한 가지에 함께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플스에서 가장 우수한 게임이 레데리라고 생각 합니다만... 피파도 물론 매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