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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버는 법 말고, 1,000억 생각하는 법

진짜 부자는 명상한다

by 이태백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지식이 다양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10억이 있으면 100억을 만들 줄 알고, 그것을 다시 1,000억으로, 그 이상으로 확장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부자라고 생각한다. 부동산이나 복권, 비트코인 같은 '한 방'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진짜 부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진짜 부자들은 그 한계가 없다. 시급을 따져가며 일해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숫자들이 그들에겐 현실이다. 그들은 책과 지식, 호기심, 관찰력을 끝없이 갈고닦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와 경제적 구조의 접점을 발견한 사람들이 결국 부자가 되었다.

 호기심이 사그라지지 않는 사람은 대개 모험을 즐긴다. 모험가 기질을 가진 사람은 자연히 그 사상의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내가 관찰해 본 많은 기업가나 부자들은 철학이나 과학, 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오랫동안 공부하다 보면, 결국 모든 분야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어쩌면 그들이 읽은 책의 1%도 읽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비록 부족하더라도—자연스레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왜 태어났을까?’

 ‘우주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고, 질문은 다시 사색을 낳는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 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이 명상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누구는 연공이라 부르고, 누구는 기공이라 하며, 또 누구는 명상이라 칭하지만, 결국은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반복된 훈련 속에서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 것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때로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는다. 예컨대 좋은 꿈을 꿨다는 이유로 복권을 사거나, 아침에 안 좋은 징조를 봤다고 하루 종일 조심하는 행동들. 이처럼 과학으로는 아직 다 벗겨내지 못한 숙제들이, 사실은 점점 과학적 접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자역학처럼, 고차원의 세계처럼, 인간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왔던 것들도 하나씩 해명되며, 우리는 조금씩 이 세상의 비밀을 벗겨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직도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앞으로 그 비밀들을 푸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며 자아성찰을 해야 한다.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상, 내 눈에 스치는 모든 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한다. 그래서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일이 허다하다. 어떻게 보면 참 억울한 일이다.

 성경에서는 현자들이 50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 나이까지 살면 깨달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은 분명히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성장에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나온 지금, 인류가 환경 문제만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과학적으로 텔로미어를 연장해 노화를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것이 상용화된다면, 인간은 훨씬 더 오래 살 것이고, 그만큼 지식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수명이 늘어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명상과 자아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현명한 이들이 더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오히려 수세기 전에는 세상이 단순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사유에 잠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복잡한 일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그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유토피아적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라 믿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는 생각한다.

 전쟁 중에도 유토피아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존재했듯, 생각이 있는 인간은 시대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현대는 바쁘고,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유조차 잃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이들이 사유하고, 깨닫고, 새로운 관점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 고차원에 도달했을 때, 자본주의를 다루는 방법 정도는 오히려 아주 단순한 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의 법칙을 외우기보다, 명상 속에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생각을 떠올리고, 지금껏 가져온 세계관을 근본부터 확장해 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우주적인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토록 복잡하게 여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명상을 자주 하는 나에게 누군가 묻는다. “고차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요? 명상을 하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 역시 지금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나는 이렇게 사유를 글로 풀어내고, 또다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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