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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임 하는 아빠입니다

by 이태백


 글을 써 보니 알겠다. 왜 책을 봐야 하는지.
 책 한 권에 들어가는 저자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A4 두 장짜리 글 하나 쓰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같은 주제로 백 장을 채워 책 한 권을 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영상도, 음성도 없이 오직 1차원적인 ‘글’만으로 모든 걸 전달한다는 것. 글이나 삽화만으로 독자가 이해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작업이다.

 유튜브 영상 하나 만드는 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한 주제로 채널을 꾸준히 운영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채널은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정리된 정보, 꾸준한 시선, 성실한 리듬. 꾸준함이 만든 콘텐츠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배움이다.

 게임은 다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영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게임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게임 하나에는 기획, 서사, 기술, 설계, 감각이 다 들어간다. 사람들을 계속 참여하게 만들려면 그 안에 장치와 내러티브, 동기 유발이 자연스럽게 짜여 있어야 한다. 그건 그냥 ‘재밌게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 게임은 오래전부터 세계를 사로잡아 왔다. PC게임 초창기부터 그랬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리니지. 그 천재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게임을 만들어냈던 걸까?

 나는 게임기가 막 나왔을 때부터 게임을 해 온, 말 그대로 게임 1세대다. 지금 40대지만, 아직도 10대들에게 쉽게 지지 않는다. 게임 용어로 말하자면 ‘발리지 않는다’. 내향적인 성향이라 혼자 있을 때 충전되고, 혼자 있을 때 외부와 연결되는 수단이 바로 게임이었다. 머리를 식히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게임을 통해서였고, 동시에 게임은 엄청난 정보와 아이디어의 원천이기도 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어릴 적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나 남북전쟁 같은 게임을 통해 역사와 전쟁, 전략의 배경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지루하던 역사가 생생한 세계가 되었다.

 요즘 게임은 조작법도 어렵고,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단순한 테트리스 같은 게임이 아니다. FPS 게임 하나만 해도, 순발력과 시야, 상황 판단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어른들, 특히 엄마 세대는 감각적으로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세계다.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게임하는 걸 못마땅해하신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게임 실컷 해라. 대신 좋은 게임은 아빠가 골라줄게.” 우리가 함께 하는 소통의 방식 중 하나는 게임이다.

 배틀그라운드가 처음 나왔을 때, 딸, 아들과 함께 해 본 적이 있다. 내 조작 실력이 애들을 따라가지 못해 혼자 반성도 많이 했다. 이겨보려고 밤에 몰래 연습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끼리 노는 자리에 어른이 진심으로 껴 주면,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체육관 제자들과 PC방에 간 적이 있다. 그날, 나는 내 제자들이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게임 속에서 유저들에게 즉각적으로 영어로 심폐소생술을 요청하고, 구호품을 달라고 말하며, 친구를 만들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아무런 부담도 없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반응했다. 처음엔 이런 사이버 상의 활동이 걱정스러웠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 진짜 사회생활을 가장 활발히 했던 건, 랜선 친구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나는 게임에서 종종 영감을 받는다. 패턴 디자인, 제품 이름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게임 덕분에 제자들과, 어린 친구들과 대화가 통한다. 같은 세계를 보고 같은 언어를 쓰며, 세대 차이를 좁힌다.

 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게임을 잘하면, 아이들은 어른인 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기술로 승부하는 세계에서, 실력 있는 어른은 말 없이 인정받는다.

 요즘 ‘책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이렇게 글도 쓰지만, 세상에는 좋지 않은 책도 많다. 편협한 사고를 담은 글, 특정 사상을 강요하는 책도 있다. 글이 무조건 옳고, 책이 무조건 고귀한 건 아니다.

 게임은 나쁘다고 하면서, 술과 담배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차피 게임을 안 하면, 그 시간에 다른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게임은 건전한 방향으로 즐기면, 훌륭한 취미이고 도구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게임을 좋아하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가 먼저 게임을 배워보면 좋겠다. 한두 판만이라도 같이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게임을 함께 하기 시작하면, 운동도 함께 하기 쉬워진다. 함께할 수 있는 연결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게임은 빠져들면 어른도 쉽게 헤어나기 어렵다. 뒷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젊은 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한 가지에 함께 집중했던 기억이 남는다면, 그것만큼 값진 것이 어디 있겠는가?







desktop-wallpaper-red-dead-redemption-2-arthur-morgan-red-dead-redemption-2.jpg 플스에서 가장 우수한 게임이 레데리라고 생각 합니다만... 피파도 물론 매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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