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호랑이를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사냥꾼들과 함께 다니며 만담을 꽤 많이 들어왔다. 물론 중년 남자들이 모이면 허풍도 섞이기 마련이라, 전부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원도에 사는 형님, 충북에 사는 형님, 경남에 사는 형님까지—서로 전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냥 허튼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들이 말하는 건 바로, 발자국이다. 겨울철 산에 오르다 보면 ‘범 발자국’을 봤다는 증언이 유난히 많다.
지역 산을 잘 알고, 멧돼지를 추적하며 길을 안내하는 사냥꾼을 ‘발꾼’이라 부른다. 30년 넘게 밥 먹듯 산에 올라 사냥만 해온 사람들이라면, 그 산을 손바닥 보듯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낚시꾼이 수십 년 낚시를 하다 보면 물고기 머릿속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물고기라면, 이 날씨에 어디 있을까?’—그 감각이 생긴다. 결국 잘 낚기 위해선 내가 생선이 되어야 한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사냥꾼이 멧돼지가 되지 않고는, 멧돼지를 제대로 쫓을 수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간이 만든 길 대신 짐승들이 다닐 법한 길을 따라간다. 발꾼들은 발자국, 배설물, 땅의 흔적만 보고도 멧돼지의 활동 반경을 파악한다. 교미 흔적, 흩어진 낙엽, 샘물의 탁함을 통해 짐승이 머물렀던 자리를 읽는다.
그런 형님들이 낯선 발자국을 봤다고 했다. 고양이 발자국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이상하리만치 컸다. 거의 성인 남자의 주먹만 한 크기였단다. 그렇다면 범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삵이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그보다 훨씬 큰 발자국이라면, 호랑이나 표범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냥꾼들이 모이는 카페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사람 주먹만 한 고양이 발자국 사진이 올라온다. 그러고는 묻는다. “이게 대체 뭔가요?”
산을 처음 타는 초보자도 아닌데, 그들조차 단언하지 못한다.
사단법인 한국호랑이보호협회장 임순남이라는 분이 있다. 스스로 호랑이 연구회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호랑이의 흔적을 추적한다. 최근에는 호랑이가 먹이를 뜯고 간 자리를 발견했다며 흥분한 채 영상을 올린 것을 보았다. 그전까지는 나도 한반도에 호랑이가 살고 있을 가능성을 80%쯤 믿었는데, 그 영상을 본 이후에는 95%까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두운 시간에 산에 혼자 가는 일이 은근히 무섭다. 밤에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호랑이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여름이면 폐가를 찾아 귀신을 쫓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그런데 호랑이나 맹수를 찾는 콘텐츠는 어떨까? 오히려 확률은 더 높고, 긴박감은 더 클 것이다. 물론 귀신보다 맹수에게 당할 확률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관련 증언은 더 늘어난다.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때, 호랑이가 내려오는 모습을 봤다는 인터뷰도 있다. 경찰과 그 친구 네 명이 코앞에서 호랑이를 목격하고 실제로 신고를 했던 일이다. 강원도에서 호랑이 목격 신고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호랑이는 없다”며 종결해버리곤 했다. 그저 말뿐인 일이 아니었다. 호랑이가 산불로 서식지를 잃고 산 아래로 내려온 것을 봤다는 시민의 신고에도, 담당 부처는 단호하게 사건을 닫았다.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협회나 환경 보호 단체들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없다”고 단정해버렸다. 물론 호랑이가 직접 거리로 나와 자신을 증명한다면야 큰일이긴 하다. 그러나 호랑이가 살아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데 들이는 노력의 수준을 보면 실망스럽다.
러시아처럼 호랑이가 실제로 사는 나라에서도, 한 마리 촬영하려면 수백 명을 풀고 수개월을 쏟아 부어야 간신히 한 번 찍을까 말까다. 호랑이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인간이 무기를 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 탓에 사람을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일제강점기 해수 구제 정책으로 일본군이 호랑이를 쓸어버린 게, 아직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에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처럼 산이 높고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형에서 말이다.
한국호랑이보호협회장 임순남 회장은 지금까지 혼자 수차례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아무도 호랑이를 쫓지 않을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호랑이는 없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진짜 산을 알고 싶다면, 등산로가 없는 산을 타봐야 한다. 길이 없는 산을 오르면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이 이 땅에 살아 있는지, 그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사냥할 때 개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다니다 보면 담비도, 오소리도, 노루도, 심지어 독수리도 마주친다.
인간은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 믿고 살지만, 사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생명체는 그보다 훨씬 많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더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그것을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알 수 없을 것만 같던 세상사가 한결 명확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