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백 Oct 22. 2023

부자란 무엇일까?

세상이 하는 명상이나 에너지 타령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돈이 많기 전에 지식이 다양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 함은 10억이 있으면 100억을 만들 줄 알고 그것을 다시 1000억으로 그 이상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본다. 이 방법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부자라 생각한다. 한 방에 부동산이나 복권이나 비트코인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진짜 부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 진짜 부자들은 한계가 없다. 시급을 계산하여 일을 하면 어느 세월에 천문학적인 숫자를 만들 수 있겠는가. 진짜 부자들은 책과 지식과 호기심, 관찰력이 죽을 때까지 꺾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경제적인 것의 접점을 찾은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험을 즐기기 마련이다. 모험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사상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관찰해 본 기업가나 부자들은 철학이나 과학, 수에 대한 개념이 훤했다. 그런데 이것들을 지속적으로 공부하다 보면 결국은 다 한 점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난 그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지만, 어쩌면 나는 그들이 읽은 책의 1%조차 읽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하다못해 이 정도밖에 읽지 않은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왜 태어났을까’, 

 ‘우주는 어떻게 작동하지?’

 이런 생각을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해답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이 명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형태가 다르지만 연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기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명상이라 일컫는 사람도 있는데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이 과학이 알려주지 못하는 다른 것들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곤 한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막무가내로 믿기도 한다. 가령 좋은 꿈을 꿔서 복권을 산다거나 아침에 나쁜 징크스를 보았으니 하루종일 조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 벗겨내지 못한 숙제들이 이미 과학적으로 접근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있다고는 믿는 3차원 이상의 고차원들,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하는 양자역학도 이에 해당된다. 이제까지의 상식선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해결되면서 인간은 이 세상의 비밀을 벗겨나갔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아직도 미미한 일부일 뿐이고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해 갈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탐구도 하고 고민도 하고 자아성찰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이상 모든 것에 관심을 둬야 하고 내 눈에 스쳐가는 것은 모든 것이 관심거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100년도 채 못 살기 때문에 영적상승을 못하고 죽는다. 어떻게 보면 몹시도 억울하다. 성경을 보면 현자들이 500살까지 산다고 나온다. 그 나이까지 살면 깨달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발전해서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텐데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영적상승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유전자 편집가위까지 나온 현재 시점에서 인류가 환경오염 등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분명 과학적으로 텔로미어를 연장시키며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상용화가 되면 수많은 인간이 오래 살 텐데 그렇다면 인간의 지식의 폭이 굉장히 넓어질 테다. 


 수명이 길어진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명상과 자아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설파하는 현명한 현자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오히려 수세기 전 세상이 복잡하지 않아서 생각할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현자들이 더 많이 나왔을 수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처럼 복잡하게 살지 않았다. 나 역시 자본주의 시대에 살며 이 시대를 따라가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좋다고 보지는 않다. 유토피아가 가장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라고는 여긴다. 옛날에는 오히려 전쟁 속에서도 유토피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현대인은 바쁘고 돈이 없으면 무시를 당하는 시대라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다 오래 살게 되면 그렇게 깨우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고 가르침도 많이 나오면서 인간이 더 고차원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고차원에 다다랐을 때는 자본주의를 주무르는 법 정도는 오히려 굉장히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나 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대신 조용히 명상을 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해 내고, 지금껏 가져왔던 관점을 크게 크게 늘리게 되는 것. 그로 인해 우주적인 관점을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토록 어렵게 여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명상을 자주 하는 나에게 누군가 고차원적인 것이 무엇이며 명상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 답을 나도 지금 찾고 있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추구하다 보니 이렇게 사색을 하고 글을 쓰게 되고 자꾸만 뭔가를 글로 풀려고 하나보다.



이전 12화 한반도 산에 호랑이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