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바쁘니까 청춘이다 12화

라이킷 9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태백 Oct 18. 2023

한반도 산에 호랑이가 산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호랑이를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사냥꾼으로 돌아다니며 만담을 많이 들어왔다. 물론 중년 남자들이 모이면 뻥카가 많으니 허풍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에 있는 형님, 충북에 사는 형님, 경남에 사는 형님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듣고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발자국. 겨울철에 산에 오르며 범의 발자국을 봤다는 증언이 너무 많다.

지역의 산을 잘 알고 멧돼지를 추적할 때 길을 안내하는 사냥꾼을 발꾼이라 부른다. 30년이 넘게 밥 먹고 산에 올라 사냥만 하다 보면 얼마나 그 산을 손바닥 보듯 잘 알겠는가. 낚시꾼이 30년 정도 낚시를 하다 보면 물고기 머릿속이 되기 마련이다. ‘아 내가 물고기라면 이 날씨에 어디에 가 있겠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고기 낚시를 잘하려면 내가 생선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냥꾼들도 사냥을 잘하려면 스스로 멧돼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 대신 짐승들이 갈만한 길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발꾼들은 멧돼지를 추적할 때 발자국이나 배설물 흔적만 봐도 멧돼지 사이트가 어디에 있는지, 멧돼지가 근처에 있는지 나갔는지 추적이 가능하다. 교미했던 자리의 흐트러진 흔적도 찾아내고, 샘물의 맑기를 가늠하여 돼지가 물탕한 흔적도 알아보는 것이 발꾼이다.

그런 형님들이 낯선 발자국을 봤다고 했다. 고양이 발자국과 꼭 같이 생겼는데 사이즈가 괴이하게 컸다고 한다. 거의 성인 남자 주먹 만한 발자국. 그건 범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알기로 삵이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양잇과 맹수인데 반뼘치나 더 큰 고양잇과 발자국이라면, 호랑이 아니면 표범 밖에 없다. 사냥꾼들이 모이는 카페에 몇 년에 한 번씩 사람 주먹 만한 고양이 발자국 사진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이게 대체 뭔가요?” 산을 처음 타는 초짜들도 아닌데. 알만한 사람들도 확실하게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단법인 한국호랑이보호협회장 임순남이라는 분이 있다. 스스로 호랑이 연구회를 만들어 호랑이를 쫓는다. 최근에는 호랑이가 먹이질하고 간 흔적을 찾았다며 흥분을 해서 유튜브를 찍은 것을 보았다. 그전까지는 나는 한반도에 호랑이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80% 정도만 믿었는데 이 영상을 본 후론 95% 까지 확신이 더 생겼다. 그렇기에 어두운 시간에 산에 혼자 가면 무섭다. 어두운 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호랑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충분히 범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이면 폐가를 찾아가 귀신을 찾는 유튜버들의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호랑이나 맹수를 찾는 콘텐츠면 어떨까? 더 확률도 높고 긴박감도 더할 텐데. 물론 귀신이 목숨을 위협할 확률보다 짐승 손에 죽을 위험이 더 크긴 하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관련 증언들은 더 많이 나왔다. 찾다 보니 고성에서 산불이 났는데 호랑이가 내려온 것을 목격했다는 인터뷰도 발견했다. 경찰과 그의 친구들 네 명이 직접 호랑이를 코 앞에서 보고 신고를 한 것이다. 강원도에서 호랑이 목격 신고 담은 한 두 번 있은 일이 아니었다. 산불이 난 후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를 목격한 시민이 신고를 했는데 공무원들이 섣불리 ‘호랑이는 없다’며 사건을 종결시켜 버린 일도 있다.

우리나라 야생동물 협회나 환경 보호 협회에서는, 두 눈으로 본 일이 없으니,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없다’라고 단정을 지어 버렸다. 그렇다고 호랑이가 증명을 하겠다고 거리에 나와서 어슬렁 거리면 큰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호랑이가 살아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데에 노력하는 정도를 보면 조금은 실망스럽다. 호랑이가 그렇게 많이 사는 러시아에서도 호랑이를 한 번 촬영하려면 100명이 넘는 인원을 풀어서 야생동물 카메라를 설치하고 반년을 돌아다녀야 겨우 한 번 촬영을 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호랑이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인간에게 무기가 있다는 것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무서워한다. 일정 시절에 해수구제정책으로 일본 놈들이 범들을 싹쓸이한 것이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한반도 호랑이들이 그때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몰살되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처럼 산이 높고 산맥이 이어진 형세에서 말이다. 한국호랑이보호협회장 임순남 회장은 본인 혼자 호랑이의 흔적을 몇 번이나 발견했는데, 어쩜 이렇게 아무도 호랑이를 쫓지 않는 걸까?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걸까? 쫓거나 연구를 하지 않으면 호랑이가 없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말든가.

진짜 산을 알고 싶다면 등산로가 없는 산을 타 보아야 한다. 길이 없는 산을 타 보면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냥을 하며 개들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따라 뛰다 보면 담비도 오소리도 노루도, 독수리도 마주친다. 인간은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 양 행세하며 살고 있지만 아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의 종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어떻게 더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더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습을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나면 알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사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