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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백 Jul 05. 2023

밤에 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이유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패턴이 거의 20년이 되었다. 체육관 운영을 오래 하며, 밤늦은 시간에 마친 후 일을 하던 것이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제조공장과 일하느라 시간을 맞추려는 이유가 더 크다. 나도 일과를 마치고, 제조 공장도 일과가 다 마무리된 조용한 밤시간이 되면, 우리는 그때부터 샘플을 만들고 오류를 점검하고 서로의 의견의 간극을 좁혀나간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새벽 2시가 넘은 때이다.     


 어떨 때 나는 상당한 완벽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데, 외국 제조자와 문화가 다르니,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디테일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리 정확히 거듭 말했다고 생각해도 공정의 디테일 때마다 크고 작은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써달라고 한 색상과 재질이 있는데, 미묘하게 차이가 난 결과물을 보고 이유를 물어보면 ‘이게 더 좋은 거라서’ 그랬다는 허탈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 내가 요청한 대로만 해 달라고 하지만, 현지에서 재료 수급에 조금만 차질이 생기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품질이 바뀌기 십상이다. 오래 거래를 한 공장이라고 조금 방심하거나 느슨해지면 어김없이 색상이나 퀄리티가 잘못 나온다. 공장에 직접 가서 매번 감시를 할 수 없으니, 무엇을 만들 때마다 중간에 보고를 받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생겨나며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는 집착적으로 해외 공장들과 모든 공정을 공유한다. 해외 제조 공장들도 나 같은 바이어는 처음 봤다고 하고, 함께 일하는 두한 형도 나를 보며 그렇게까지 디테일할 필요가 있냐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야 말로 브랜드 품질의 성패를 가리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두한 형도 형이 담당한 공장에 오더를 해두고 한 두 번 불량을 받아보니 그제야 나처럼 공장을 괴롭히며 중간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의 운영 비결을 하나 공개 하자면 내가 밤새도록 공장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비결을 공개해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공개한다. 물론 나와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것이고. 그런데 이렇게 매일 밤 소통하고,  공장 사장을 구워삶은 후 내 사람으로 만들어서 작업을 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도 않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매일 밥 해 먹고 청소하는 일이 쉽지 않듯 매일 이 공장 저 공장 사람들을 체크하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화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밥이야 안 먹으면 내가 굶고, 청소는 안 하면 당장 지저분한 게 눈에 보이지만, 이 일은 하루 안 한다고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 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 대신 낮에 일해줄 직원들이 생기니 마음 놓고 일을 할 수가 있고, 만에 하나 뭐 하나 잘못 나오면 상세페이지 수정부터 고객 클레임까지 감당해야 하는 식구들의 고생을 생각하자면 나의 밤샘 활동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무작정 공장 사장들을 괴롭힌 것은 아니다. 일단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브랜드가 성장하면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장인지부터 본다. 그다음 내가 이제껏 일했던 회사의 연혁과 방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적인 이야기도 아주 많이 나눈다. 현재의 시장과, 앞으로의 시장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주의 깊에 보는 것이, 이슬람 국가의 공장이면, 하람(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는 친구인 지도 체크한다.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알라의 이름으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오래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나는 주문을 아주 일부만 준다. 그리고 가격을 본다. 가격을 깎을 생각을 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가격을 생각했을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인지를 확인한다. 가격을 계속 깎으면 퀄리티가 낮아진다. 공장도 먹고살 만해야 품질경영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한 금액을 최대한 맞춰 주려고 한다. 이미 거래하는 공장이 여러 곳이 있고 각 공장의 가격표를 받아본 데이터베이스가 한 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딱 보면 답이 나온다. 조금씩 만들어 그 공장과 나와 교감이 생기고 서로에게 신뢰가 쌓였을 때 주문량을 차차 늘린다. 어느 정도 공장과 발맞추어진 것 같으면 웬만해선 한 두 푼 싸다고 다른 공장으로 바꾸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일하는 방식에 맞추고, 서로 길들여지며 하나씩 맞춰 가야 하는 시간이 엄청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거래를 트기 시작하면 최소 십 년씩은 꾸준하게 주문을 준다. 그동안 공장 사장과 나는 둘도 없는 브라더가 된다.     


 듣기에 매우 갑갑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매일 하는 짓이다. 회사가 만들어지고 각자의 전문 분야들이 있기 때문에, 돈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돈관리를, 홍보,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은 홍보 마케팅을, 웹을 잘 만지는 사람에겐 그 분야를 다 맡겨 버리고 나는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사무실에 밤새 앉아 있거나, 내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밤새 일을 한다. 낮에 미팅이 있거나 행사가 있으면 두세 시간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시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쪽잠을 자고, 밤이 되면 나를 찾는 이 공장 저 공장 사장들을 상대한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부분이고, 잘해 왔던 분야기 때문에 누구에게 맡기기도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하며 최근 내가 해 낸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축구공을 만든 일이다. 대한축구협회 KFA 테스트를 단 두 번 만에 통과하고, 매년 테스트를 한다는 40여 개의 브랜드 중 단 7곳만 받았다는 KFA 인증도 받은 것이다.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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