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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백 Jul 27. 2023

우리도 사옥 한 번 지어보자

사업 12년 차, 작은 사옥 지었습니다


 나는 안양사람으로 한 번도 안양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안양 사람들은 특유의 자부심이 있다. 특히 옛날 어른들도 아닌 내 나이 또래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해서 그리 큰 애착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으나, 안양 사람들은 유독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이 높은 편인 것 같다. 안양에서 농구 시합이 이겼다 하면 기쁘고, 모 기업은 우리 동네 기업이니까 팔아주고. K리그에서도 안양 서포터들이 TOP3 안에 들 만큼 유명하다. (안양이 빨리 1부로 승격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그래서 처음 외곽으로 떠난다고 할 때 주저했다. 나는 과연 안양을 버리고 갈 수 있을 것인가. 함께 일하던 후배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사옥을 짓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대학 후배 둘을 불러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세 회사의 짐을 합치니 상가 건물 두 층을 몽땅 써야 할 정도로 규모가 늘었고, 월세도 엄청 나갔다. 게다가 그전부터 늘어나는 재고들 때문에 이리저리 창고를 옮겨 다니는 신세가 되어 언젠가부터 이사가 일상이 되고 일이 아닌,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월세 낼 돈으로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땅을 물색하러 다녔다.     


 땅 구경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쇼핑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부동산 발품 파는 것은 나름 즐거웠던 것 같다. 후배들과 우리 셋은 주말이면 경기도 외곽 지역에 나온 급매나 경매 물건들을 하나씩 알아봤다. 마음에 드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고,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새 사무실의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과정들이 다 재미났다.


 그런데 사무실 자리를 구한다는 내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하루는 시나브로 부동산을 들렀다가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도로변의 땅이라 진입이 쉽고, 차후 매매가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주변은 아직 개발된 것이 별로 없어 땅값이 도시에 비해 매우 저렴했다. 용도변경을 할 것도 없었고, 땅을 골라 건물을 짓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나는 당장 애들을 데리고 가서 구경을 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부동산 중개인이, 이 구역이라며 땅을 보여주는데, 보자마자 이상하게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부동산을 고를 때 아무리 조건적으로 좋다고 해도, 딱 그곳을 내 발로 밟았을 때 주는 기운이라는 게 좋을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결심이 들었을 때 계약을 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후배들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쿨하게 가계약금을 걸었다.     


 공사를 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후배들은 태평했다. 업자를 써서 잘 지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부실공사로 인한 문제가 생긴 사례를 많이 접했던 나는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을 섭외해서 모든 과정을 꼼꼼히 체크해 가며 지었다. 건물을 지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에 만족한다. 사실 꼬투리를 잡으면 끝도 없게 되는 거고, 어느 정도 물만 안 새고 부서지는 데 없으면 만족하고 잘 쓰는 편이다. 전국에 물난리가 나서 비가 내리치는 날 물이 조금 새서 방수 페인트를 칠한 적은 있다. 그 정도야 어떤 건물이라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문제 아닌가. 시공하신 사장님도 양심껏 좋은 자재를 써서 잘 만들어 주셨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내 땅에, 내 회사를 지어 보았다. 직접 지은 내 건물에 산다는 편안함이 제일로 좋았고, 직접 지은 내 건물이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집주인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했다. 하지만 대형견들을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고 10년이고 20 년이고 원하는 데까지 살 수 있고, 건물에다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자유로움이 있다.      


 완공이 되고 안양에서 어마어마한 이삿짐이 들어왔다. 짐을 푸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식겁할 만한 일이었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꾸미는 것도 큰 일이었다.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잠시, 물건은 다시 늘었고, 후배들은 또다시 좁다며, 더 넓은 곳으로 가자고 왕왕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고, 어떤 일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으며, 어떨 때는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는 일도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언젠가는 하겠지 싶었던 사옥 만들기를 후배들의 설레발에 후딱 해치우게 되었고, 이천으로 이사를 온 후로 원래는 작은 매장을 오픈하려고 했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잠정 중단을 한 덕에 오히려 쉬는 타이밍을 활용해 나 홀로 생각을 하며, 축구공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짜인 대로 흘러갔던 것은 아닐까. 모든 시기는 몽땅 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쁘고 힘들고 즐겁고 기쁜 우리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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