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이후의 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얘기가 '가난'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사람들한테 하소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굳이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나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뒤에 나오는 나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한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번 해본다. 굳이 어둡고 우울한 얘기를 읽기 싫으신 분들은 바로 뒷장 [추억]편으로 넘어가시면 된다.
우선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월 동안 우리 집에는 단 한 번도 에어컨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없다. 그리고 나는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학용품은 거의 2살 터울 오빠가 쓰던 것을 물려받았고 부러지지 않은 새 크레파스 세트를 갖는 것이 당시 소원이었다. 어렴풋이 초등학교 때 일주일 용돈이 천원이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생일이었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나 피자헛에서 외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그런 곳에서 피자를 먹어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포크랑 나이프로 피자를 서툴게 썰다가 포크를 땅에 떨어트리면서 큰 소리가 났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 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고 당황한 나는 재빨리 포크를 주우려고 했는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이런 데서는 땅에 떨어진 식기를 줍지 말고 직원을 불러서 새로 달라고 하라고 설명을 하시고는 직원을 불러서 포크를 새로 달라고 했다. 대부분 식당이 셀프로 수저를 챙겨야 하는 요즘에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당시 나는 처음 제공해 준 수저 말고 새 수저를 달라고 하는 게 손님의 당연한 권리라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뭔가 막연히 어린 마음에 혼날까 봐 얼른 주워서 흘리지 않은 척 다시 그걸로 먹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내가 겪은 거의 최초이자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레스토랑의 기억이다. 피자헛을 레스토랑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흔히 얘기하는 아웃백, 빕스 등은 26살인 지금까지도 기프티콘을 선물 받아 한 번 갔던 아웃백 말고는 가본 적이 없다. 안 가 버릇 하다 보니 이제는 갈 돈이 있어도 가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달까. 언젠가 훗날에, 우리가족 다 같이 꼭 아웃백이나 빕스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