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빠와 함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근처의 태권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 태권도장을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었다. 당시 사범님과 체육관에 다니던 언니 한명, 그리고 나와 오빠, 이렇게 넷이서 친했었기 때문에 마지막부 수업을 마치고 같이 청소를 한 다음에 사범님이 집까지 태워다 주시는 건 거의 일상처럼 있는 일이었다.
한번은 주말에 도장 홍보차 전단지를 돌릴 일이 있어서 우리 넷이 모여 전단지를 돌리게 되었다. 전단지를 책가방에도 넣어 숨겨보고 소매에도 넣어보고 갖은 방법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 엘레베이터를 탄 후 제일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꼭대기부터 계단으로 한 층씩 내려가며 전단지를 돌렸다.(지금은 이런 형식의 전단지 배포가 거의 사라졌지만, 이건 약 15년 전의 얘기이다) 주어진 분량의 전단지를 다 돌리고 나서는 사범님이 쏘는 피자를 마음껏 먹으며 나름의 뒷풀이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는 1년에 한번 정도 여름에 실시하는 담력훈련 캠프같은 것이 있었다. 체육관에 모여 다같이 하룻밤 자면서 밤에는 공포영화를 틀어주고 새벽즈음 근처 뒷산에 가서 담력체험도 하는 등의 이벤트였다. 겁이 많았던 나는 공포영화도 보는둥 마는둥 하고 담력체험하러 올라갔을 때도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옆에 있던 언니랑 오빠가 나를 놀리면서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가하면 나는 겨루기 선수 제의를 받기도 했다. 당시 나는 키가 160cm에 38kg였기 때문에 가장 가벼운 체급으로 겨루기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여자 참가자가 적다 보니 예선부터 나와 한 체급 높은 상대와 붙게 되었다. 예선에서 한 체급 높은 상대를 제끼고 나니 그 다음 상대는 그거보다도 한 체급이 더 높았고 거기까지는 잘 이겨냈다.
문제는 그 다음 상대가 또 한체급이 높아지면서 상대가 손으로만 툭 밀어도 나는 거의 경기장 밖으로 밀려 나갈만큼 체급차이가 많이 나서 결국 준결승에서 지고 말았다. 그걸 본 당시 관장님이 겨루기 선수를 제의했지만, 성적이 나름 잘 나왔던 터라 부모님의 반대와 나의 확신부족으로 그 길을 가지는 않았다. 가끔씩 그 때 선수를 하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