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땅을 일구기 위해 흙을 파면 지렁이가 화들짝 놀라 지상으로 패대기 쳐진다.
내가 놀라는 게 아니라 지렁이가 놀랜다.
처음 지렁이를 접했을 땐 "으악 지렁이다! “ 하고 놀래서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징그럽긴 하지만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아우 미안하다.
잠을 자고 있을 수도 독서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삽질에 여지없이 방해가 되어버렸네 ‘
지렁이가 살고 있는 땅은 흙이 폭삭하고 부드러우며 보들보들하여 건강한 땅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땅속에서 나뭇잎이나 동물들의 똥이나 유기물들을 먹고 그 긴 몸을 치렁치렁 끌고 다니며 여기저기 유기질의 영양분을 쏘아댄다.
지렁이의 똥은 분변토라 하여 굉장히 많은 영양소를 가지고 있어 건강한 흙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지렁이가 지나다닌 길은 비만 오면 물길의 통로가 되어 나무뿌리에 수분공급의 역할도 하니, 지렁이 이 녀석 생긴 것과는 달리 땅속에서 무지 하는 일이 많다.
자연과 토양에는 해 끼치지 않는 착한 친구들이다.
입술이 텄을 때 바르는 립스틱에는 지렁이의 성분이 들어있다. 지렁이의 피부에는 건조함을 막아주는 기름성분이 있는데 그것이 립스틱의 재료로 쓰인다.
"으악! 징그러운 지렁이가 내 입술에"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비만 오면 땅 위에서 지렁이를 자주 발견한다.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바깥으로 나온다고 하니 혹시나 비 오는 날 지렁이를 보게 되면 물 속이 아닌 그늘진 흙 속으로 던져주는 것이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밭을 갈고 있으면 딱새들이 주변 나뭇가지에 왔다 갔다 한다. 뒤집어진 흙속에서 튀어나온 각종 벌레와 지렁이를 잡아먹기 위해서이다.
그럴 땐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 주며 강제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낚시의 미끼로도 많이들 사용하는 갯 지렁이는 갯벌에 산소를 공급하고 땅을 썩지 않게 만든다고 하니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역시나 그들의 살길을 모색하며 오늘도 땅속에서 생존을 위해, 번식을 위해, 건강한 흙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똥을 싸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