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 탕 탕 탕 '
오래된 나무 대문을 주먹으로 세게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밥 좀 줘~~!!! 배고파!!!"
"누구야!!!!!"
"야야야 튀어 튀어!!!"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고 집안에서 화가 난 주인이 뛰쳐나오면 잡힐세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한동안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유행하던 일명 벨튀 놀이었다.
이 게임을 주도한 건 나이가 가장 많은 정식이 형과 성현이 형이었는데 언제나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는 건 두 형들의 몫이었다.
"야 여기 가자 여기"
"아 안돼 거기 우리 삼촌네야"
"야 안 들키면 되지 안 들키면"
어차피 몇 가구 되지 않는 동네에서 한집 걸러 한집이 친척이거나 이웃사촌이라 서로 모두 아는 사이었지만
문 밖에서 소리쳐 집안에 어른들을 화나게 하고 도망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벨튀 특성상 어느 집이건 상관없다는 게 정식이 형의 생각이었다.
그저 어른들을 놀리는 데에만 몰두한 것 같았다.
"야 그럼 이 집은 내가 할 테니까 저기 뒤에서 잘 지켜봐"
"잠깐만 좀 더 멀리 좀 가고"
삼촌 집이라 들키면 아빠한테 죽는다던 성현이 형은 이번엔 정말 무서웠는지 한참 뒤에 전봇대 뒤에 숨어서 정식이 형을 몰래 지켜봤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현장의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 정식이 형 바로 뒤에서 마치 내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바짝 붙어 그 긴장감을 온몸으로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식이 형은 문 앞에 움츠려 서있는 아이들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하고 눈을 한 번씩 마주친 뒤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탕탕탕!!'
"배고파!!! 밥 줘~!!!!!!"
'탕탕탕!!!'
문을 계속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정식이 형은 약이 올랐는지 문이 부서져라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탕!! 탕!!'
성현이 형네 삼촌집은 벽돌로 만들어진 단독주택이었는데, 문이 철제로 만들어져 있어서 웬만한 충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식이 형은 그런 철제 대문을 정말로 부숴버릴 작정이었는지 이번에는 온몸으로 문을 세게 밀쳤다.
나와 친구들은 대문 옆에 있는 애꿎은 벨만 연신 눌러댔다.
"하 집에 분명히 있는데"
"형 집에 누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집에 분명 누군가 있다고 확신하는 형이 우리에게 주창을 가리키며 몸을 풀었다.
"저기 봐봐 주인집 차가 있잖아 두대나"
주차장엔 정말로 차가 두 대나 있었고,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된 차였다. 우리 아빠차는 언제나 희끗희끗했지만 여기에 주차되어 있는 차는 세차를 정말 열심히 했는지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하고 광이 났다.
"형 사람 없는 것 같은데 이제 그냥 가자"
"몇 번만 더 해보고"
정식이 형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집이 다른 집에 비해 몇 안 되는 최근에 지근 단독주택과 세련된 차가 있어서 뭔가 더 승부욕이 생긴 것 같았다.
"퍽! 퍽!! 퍽!!"
얼마나 세게 밀쳤는지 문과 연결된 벽까지 같이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세게 밀친다면 분명 경첩이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야 이 새끼들아!!!!!"
집안에서 얼굴이 붉어진 아저씨가 나오며 고함을 지르면서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저씨는 맨발로 전속력으로 뛰어나왔고, 손에는 기다란 골프채가 들려져 있었다.
"너네 당장 안 꺼져 1!!??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꺼져!!!!"
얼마나 빠르게 뛰어나왔는지 우리가 미쳐 도망치기도 전에 바로 대문 코앞까지 달려 나와 우리에게 골프채를 휘두를 것만 같았다.
"야 야 야 튀어!!! 튀어!!"
정식이 형이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모자바자 바로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고, 대문 앞에 숨죽여 있던 친구들과 저 멀리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성현이 형도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줄행랑을 쳤다.
나는 그 골프채에 맞는 게 두렵고 무섭기보다도 누군가 내 뒤를 쫓아온다는 긴장감이 내 온몸의 근육 세포들을 각성시킨 것 같았다.
우린 달리기가 가장 빠른 정식이 형 뒤를 맹목적으로 쫓아갔다.
가끔 형이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평소에 험악하게 생긴 걸로 유명한 형이 그토록 밝게 웃는 건 그때뿐이었다.
나도 그런 정식이 형을 보고 밝게 웃었고, 같이 뛰고 있는 다른 동네 아이들도 함박웃음을 지은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마을 반대편까지 달려왔다.
"헥.. 헥... 야... 이제 됐어.."
정식이 형이 걸음을 멈추며 숨을 고르며 한 글자씩 말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도 모두 정식이 형 주변에 빙 둘러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몇몇은 아예 드러누워 숨을 헐떡였다.
"하하하하"
모두 가쁜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정적을 깬 건 정식이 형이었다.
"하하하하하"
형이 웃자 같이 땅바닥에 누워있던 친구들 모두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나도 왜 웃음이 나는지 몰랐지만 큰소리로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성현이 형은 아예 배꼽을 잡으며 바닥에 뒹굴거렸다.
"하하하하하하"
"야야 삼촌 표정 봤냐? 하하하하하"
"걸렸으면 진짜 죽었겠는데??"
"아 제일 웃겼다 진짜로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바닥에서 웃고 떠들며 누워있던 우리는 잠시 누워있다가 우리가 어디까지 달려왔는지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엔 몇 개의 묘지가 있었는데 그중 마을 가장 안쪽에 있는 언덕 묘지에 와있었다.
이 묘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안쪽에 있어서 나도 잘 오지 않았고, 친구들과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가끔 오는 정도라 아직 낯선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형들은 여기를 자주 왔는데 묘지가 산비탈에 있어서 미끄럼틀을 타기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묘지 한가운데에 커다란 묘가 하나 있었고, 주변이 산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묘지 앞에는 커다란 회색 돌로 만들어진 비석 두 개가 양쪽으로 묘지를 지키고 있었는데, 한쪽은 커다란 거북이 등껍질 위에 비석이 올려져 있었고, 한쪽은 한자로 뺴곡히 적힌 커다란 비석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보통 여기에 오면 거북이 머리 위에 올라타 놀곤 했는데 다행히 목이 부러지거나 비석이 망가지진 않았다.
"여기 저번에 놀다가 숨겨둔 비료포대가 있는데...."
정식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지난번에 왔다가 놓고 간 비료포대가 이 근처에 있을 거라며 주변을 살폈다.
"저기 있다!"
비료포대를 찾은 건 성현이 형이었다. 묘지 외곽 쪽 숲 나무 사이로 엉성하게 버려진 나뭇가지들로 덮여있는 비료포대를 꺼냈다.
우리는 비료포대를 가지고 묘지를 둘러싼 산 언덕 끝으로 올라갔다. 산언덕 끝에 올라서니 우리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동네 앞쪽 학교를 오르며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는 마을 풍경과, 마을 안쪽 언덕에서 바라보는 동네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나는 형들이 먼저 타고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구경했다.
"자 너 차례야"
성현이 형은 먼저 타고 내려간 비료포대를 가지고 올라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건네받은 비료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양쪽다리를 벌려 앞으로 내밀며 발을 굴렀다.
눈이 내린 겨울이 아니어도 관리가 잘 된 잔디 위에서 타는 비료포대는 롤러코스터만큼이나 빠르고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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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밖에 나가서 놀면 안 돼~?"
"음? 왜?"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거실에 들어오시며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조금 있다가 뒷구지 슈퍼에 나가 친구들과 같이 놀 계획으로 시계를 보며 정확히 5시 5분 전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나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지금 밖에 산불이 나서 소방차 오고 난리 났어"
"위험하니까 나가지 마 알겠지?"
"산불~?"
나는 평생 한 번도 불이 크게 난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 마을에 산불이 났다는 엄마의 말에 호기심이 먼저 생겨 나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금세 잊어버리고 바로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앞마당에 나오니 하늘이 뿌옇게 검은 연기로 뒤덮여있었다. 불명 한 시간 전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파란 하늘에 맑은 날씨였는데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오며 뒷목이 싸늘해졌다.
동시에 마을 전체를 뒤덮은 알싸하고 퀴퀴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듯 역겨웠다.
나는 무섭기도 하고 엄마의 말이 생각이 나서 우리 집 앞마당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는데 집 앞마당에서 바라보니 마을 안쪽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이미 그 근처에는 소방차가 서너 대 도착해서 물을 뿌리고 있었고, 마을 밖에서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몇 대의 소방차가 더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는 장소는 내가 가끔 가던 마을 안쪽 묘지였다.
아무도 없는 묘지에서 불이 날 일이 없는데 분명 우리들 중 누군가 그쪽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내게 틀림없었다.
내 머리에는 몇몇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쨌든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들 거기 서있지 말고 어서 집안으로 들어와!!!"
엄마는 밖에 있으면 위험하다며 어서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쳐 나를 불렀다.
"엄마 근데 저기 불이 왜 난 거야?"
"글쎄... 저쪽이면 희선이네하고 정식이네 바로 옆인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가스통이라도 터지면 정말 큰일인데...."
엄마는 원인 모를 큰 불이 더 번지지 않길 바라며 혹시라도 모를 일을 대비해서 집안 가스며 전기 차단기며 모두 꺼놓으셨다.
다행히도 불을 금세 잡혔고, 산 비틀 언덕에 있는 묘지에서 난 불이라 인명피해는 따로 없었다고 한다.
묘지 바로 옆에 있는 집들에도 불은 번지지 않았고, 묘지와 그 근처 나무들만 조금 탔다고 엄마가 전해주셨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뒤쪽 묘지를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산불이 나고 며칠 뒤에 묘지 근처로 갔는데 빨간색 펜스가 쳐져있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한참 뒤에 다시 한번 가보았는데 묘지는 파헤쳐져 있고, 내가 늘 올라가 놀던 거북이모양 비석과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커다란 돌비석도 없어진 상태였다.
이제 한겨울 눈이 오면 비료포대를 가지고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장소가 한 군데 줄어들어버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는 묘지가 몇 군데 더 있었고, 어딜 가나 언덕과 비탈길이 있어 언제든 미끄럼틀을 탈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