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가뭄

메마른 사람들

by 냄도

감정은 소모하는 것이었다. 마음 깊은 어떤 곳에서 계속 솟아나지만, 매사에 흥청망청 쓸 만큼 무한하지 않으므로, 잘 아끼고 모아서 꼭 필요한 때에 써야만 했다. 누구는 감정 소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기는 감정 소비하기 싫더랬다. 미안한데 나도 마찬가지야.


감정은 드러내면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짜증이 난다고 짜증을 내면, 서운해서 서운함을 드러내면 무슨 병에 걸린 사람 취급을 했다. 누구는 감정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 둘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긴 할까.


그런 줄 알고 살아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다. 감정에 높낮이가 있다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삶.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분노나 원망, 행복, 뭐 그런 것들이 없는 삶. 이게 맞는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간혹 보이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봤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아주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가면이든 베일이든 그 어떤 무언가로 나를 가리고, 감정을 내보내지 않는 것. 왜냐하면, 감정이 생기고 드러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으면 마치 홍수가 범람하듯 분출하곤 했다. 쉽지 않았다. 큰 노력과 고생이 필요했다. 그랬더니 언젠가부터 기뻐도 웃지 않게 되었고, 슬퍼도 울지 않게 되었다. 한 가지 표정만 짓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나니, 감정 자체를 느끼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예전이었으면 기뻐했을 일에 더 이상 기쁘지 않게 되었고, 슬퍼했을 일에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되었다. 그건 무어라 말하긴 어렵지만, 마치 감정 가뭄 같았다. 내가 바라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


감정 가뭄이 들고 나니, 나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더러 왜 사느냐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나는 늘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불행하지 않은 대가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데,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어쩌면 감정은 소모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마냥 어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뭄이 든 감정의 밭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메마른 사람이 될 바에는 감정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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