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을 소화시키는 방법

by 꾸마주마

서운한 마음이 나를 흔들어 깨울 때가 있다. 별 생각이 없이 듣고 지나간 말이 설거지를 하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난다.

"왜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지?"

......

"내가 이만큼 했으면, 상대방도 이만큼 나한테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

"친구라면서... 남보다 못하네..."



이런저런 생각들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쳐 나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고 미간에 큰 주름을 만들어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상대방이 예민했던 걸까... 생각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서라도 나의 공정성과 타당함을 증명하고 싶어 진다.



사람과의 관계나 마음은 수학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과목처럼 달달달 암기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이럴 땐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입장과 위치가 바뀌고, 애정의 흐름과 크기가 때때로 변한다. 어쩔 땐 상대에게 관심이 많아야 하고 또 어쩔 때는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할 때가 있다.






아직 바람이 차가운 2월. 따뜻한 빛의 주광등이 잔뜩 켜진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으로 찬바람이 스멀거린다. 옆에 벗었던 코트를 다시 집어 팔을 욱여넣는다. 음료를 주문한 뒤 다시 서운한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이 감정을 어떻게 소화시키는 걸까. 손톱 옆에 일어난 거칠고 까스러운 거스러미처럼 내 마음의 솔기가 자꾸 거스러미에 걸려 아프다.


보기엔 따듯하지만, 아직 공기는 차가운 카페에서 답을 모르는 문제를 풀고 있다. 모든 감정에도 해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딱 떨어지는 시원한 답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감정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소화키며 살아가는 걸까.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 관계는 끊는 게 답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지난날동안 상처를 받아도 별일이 아닌 것처럼 괜찮다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이던 유교사상 때문일까

상처를 주는 사람과 관계를 끊는다는 말. 그럼 우리는 누구와 연을 이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뱃속에 열 달을 품고 애틋한 심정으로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엄마에게 상처가 없는 사람은 단연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해서... 헤어지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결혼한 남편, 혹은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조차도 나에게 상처를 준다. 물론 "상처를 준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거다"라는 말은 가족을 제외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가족을 제외한다면 그 전제는 가능해질까?


사람은 사람에게 많은 상처와 서운함을 준다. 아니 주고받는다. 계속 받기만 한다면 그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끊어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한다. 내가 한두 번 상대를 서운하게 했다면, 상대는 나를 서너 번 서운하게 했을 것이다.

이 관계의 서운함이나 상처가 일방적이었는지... 아니면 주고받는 관계였는지 생각해 보면 조금은 정리가 될 것 같다.


일방적으로 상처나 서운한 감정을 계속해서 받기만 한 관계였다면 가족이라 할지라도 끊어내는 것이 맞고, 그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은 관계라면...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의 계곡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곱씹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도 그에게 서운함을 주었고, 그 역시 나에게 서운함을 주었으니 말이다.

우리 사이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그저 모두가 외롭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일 뿐이다.




따뜻한 주광등이 켜져 있는 카페에 가자. 그리고 따뜻한 음료를 한잔 시켜놓고, 입고리를 올려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자. 조금 이상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공간이 조금 늘어나 서운한 마음을 밀어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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