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마주마 Sep 02. 2024

사랑하나요?

마흔두 살이지만, 저는 아직입니다.

오후 4시. 2잔의 커피를 마셔버린 터라 또 마시기엔 부담이 되어, 밍하고 심심한 게  매력인 공차에 들어갔다. 쫀득쫀득한  펄 추가는  해야겠는데... 소화력도 떨어지고, 이도 점점 안 좋아지는 터라 포기하고, 대신 좀 더 부드럽고 고소한 코코넛 토핑으로 변경했다. 곧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 저쪽 구석에 있는 미니멀한 1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아... 귀가 또 힘들겠구나...' 나이를 불문하고, 욕설이 심한 학생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4명이 짝을 이룬 여학생들이 들어오더니 나와 대각선인 곳에 자리했다. 쌍시옷의 폭격이 시작됐다. 하~~ 귀를 막고 있을 수도 없고, 매번 가방에 달려 있던 무선이어폰도 때마침 두고 와버렸다. 듣고 싶지 않은데 본능적으로 귀가 커진다. 작아져라... 작아져라...






 "지랄, 그니까 니 머리랑 마음이랑 따로따로라는 거잖아~"

"아 그러니까~나도 모르겠다고~"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로 방긋방긋 웃으며 쌍시옷을 내뱉는 얼굴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글부글 짜증이 올라오는데 눈치 없는 내 귀는 자꾸 저쪽을 바라본다. 귀엽고 무서운 저 아이들이 앵두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거칠게  사랑얘기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같다는 얘기다.




사랑.

사랑?

사랑...

문득 어젯밤 잠자리가 떠오른다. 편하게 대자로 누워 자고 싶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편히 잘 수가 없다. 남편도 물리치고 확보한 넓은 자리인데... 세 아이들이 돌아가며 하룻밤씩 자고 간다. 어제는 둘째가 같이 자는 날이었다.

"우와~ 오늘은 내가 엄마랑 같이 자는 날이다!"

세상 신난 아이가 베개를 들로 침대로 왔다. 귀찮지만 사랑스럽고, 불편하지만 행복한 잠자리.

 아이의 부드러운 얼굴을 나도 모르게 계속 쓰다듬고 있다.


그러다 문득 건넌방에 있는 남편이 생각났다. 내 옆에 있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퍼줄 수 있는데, 저 건넌방에 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준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돌려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물론 아이에 대한 사랑은 본능일 거다.

동물들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애틋할 정도로 강력하다.

건넌방에 있는 그이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선택한 사람인데...

아이한테 하듯 대가 없이, 바람 없이 그저 사랑할 수가 없을까.

먹는 "배"와 타는 ""는 같은 말이지만 뜻이 다, 사랑은 이 것도 사랑이고, 저것도 사랑이라는 하나의 에도 하나의 인풋으로 들어가 전혀 다른 방향의 아웃풋으로 나온다.

 


그새 잠든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천장으로 보고 똑바로 누웠다.

옆에 있는 이 아이는 나에게 실수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사랑만 남는데... 저 방에 있는 남편이 나에게 실수를 하면 절대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되어 수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이 같은 두 사랑은 어디서부터 갈라진 것일까.






"남편" 혹은 "남자"

남편(남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때에야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자상하게 나를 챙겨줄 때, 살림을 도와줄 때,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줄 때... 그럴 때 나의 감정은 더 커졌다.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는 남편을 향한 감정이 줄어들고, 어느 때는 아예 소멸됐다.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 자체를 사랑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마이 갓...

그동안 내가 한 사랑은 무엇이었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무엇이었나...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캄캄한 방 안에 누운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사랑"했던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던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돌이켜보니 나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쥐어준 순간 결별을 고했었다. 나는 그것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 밤에 갑자기 나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식이라는 본능적 사랑 이외에 어떤 이성도 사랑해 본 적 없었다. 나는 오로지 그들의 역할을 사랑한 거다.

 



나는, 결코 어떤 누구도 감히 사랑할 수 없다.

그럴 주제가 못 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그것은 너무 편협하고, 작았다.

상대의 이름 석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미운 말을 던져도 반나절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사랑"이-

이성에게는, 또 남자에게는 절대로 이윤이 남지 않는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었다.



그러니 지금 남편이 아니라 다른 결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한다 해도 내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지 못한다면 나는 또 견디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의 이름(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 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를 무겁게 누른다.

나이 마흔둘에 사랑이 너무 어렵다. 두렵다.

과연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





작가의 이전글 새싹을 보고 눈물이 나면... 갱년기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