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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마주마 Sep 02. 2024

사랑하나요?

마흔두 살이지만, 저는 아직입니다.

오후 4시. 

2잔의 커피를 마셔버린 터라 또 마시기엔 부담이 되어, 밍하고 심심한 게  매력인 공차로 향했다. 쫀득쫀득한  펄 추가는 떨어 소화력과 꾸준한 치과방문으로 감하게 포기한 지 꽤 됐고, 이제는 좀 더 부드럽고 고소한 코코넛 토로 대신한다. 고르는 재미 덕분인지 아이들은 학교 후 떡볶이 가게 마냥 공차로 들이닥친다. 곧 시끌벅적해질 예정이라 나는 코구석에 있는 주 작은 1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10여분 지났을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삼삼오오 들어온다. 생머리에  얼굴은 허옇고 입술은 뻘건 여학생 4명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마치 머털도사가 도술을 부려 분신술을 부린 양, 다 똑같이 생겼다. 얼굴이 정말 똑같은 건지, 형태만 똑같은 건지 살필 수는 없었지만 개성 강한 말투와 목소리는 다행히 구별이 되었다. 쉴 새 없이 깔깔거리던 여학생들은 곧바로 쌍시옷의 폭격을 시작했다. '아... 귀가 또 힘들겠구나...'

나이를 불문하고, 욕설이 심한 학생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매번 가방에 달려 있던 무선이어폰이 없다! 이깟 이어폰 때문에 멍청한 나 자신을 저주할 지경이다. 깔깔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매서운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전쟁터에서 총알처럼 욕들이 오고 간다. 저 욕들은 쏘는 사람은 있어도 맞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사정거리에 있지도 않은 내가 맞고 있는 기분다. 그런데 저 전쟁통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었다. "사랑"





 "지랄, 그니까 니 머리랑 마음이랑 따로 따로라는 거잖아~"

"아 그러니까 씨발~ 나도 모르겠다고~"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로 생긋생긋 웃으며 쌍시옷을 쏴버리는 얼굴은 아직도 이상하다. 귀엽고도 무서운 저 아이들은 앵두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칠게  사랑얘기하고 있다. 결국은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같다는 가십거리들이다.  사랑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울고, 웃는 저 아이들을 보니 풋풋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사랑.

사랑... 문득 어젯밤 잠자리가 떠오른다.

편하게 대자로 누워 자고 싶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편히 잘 수가 없다. 남편도 물리치고 확보한 넓은 자리였는데 결국 세 아이들이 돌아가며 하루씩 자고 가는 하숙방이 되었다. 어제는 둘째의 순번이었다. 세 남매로 항상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오롯이 엄마를 차지할 수 있는 날이었다.

"우와~ 오늘은 내가 엄마랑 같이 자는 날이다!"

세상 신난 아이가 꿉꿉하게 냄새가 밴 자기 베개를 들 침대로 왔다. 귀찮지만 사랑스럽고, 불편하지만 행복한 잠자리.

 아이의 부드러운 얼굴을 나도 모르게 계속 쓰다듬고 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며, 수익이 남지 않는 손해 보는 장사, 즉 일방적으로 주는 일이 더 많은 랑이다. 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말 못 하는 동물들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들의 모성애과 부성애는 사람이 보아도 마음이 시큰하게 시릴 정도로 애틋하고 강력하다.

그러다 문득 건넌방에 있는 남편이 생각났다. 내 옆에 있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퍼줄 수 있는데, 저 건넌방에 있는 남편에게는 왜 자꾸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난 상황이라면 나는 지체 없이 화를 내고 조목조목 요구목록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편이란 존재내가 사랑이란 감정으로 선택한 사람인데... 아이한테 하듯 대가 없이, 바람 없이 그저 사랑할 수가 없을까. 먹는 "배"와 타는 "배"는 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다르고, "사랑"이라는 말은 이 것도 사랑, 저 것도 사랑인 같은 의미임에도 나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걸까







 

조잘거리던 아이의 입이 어느새 다물어지고, 모든 힘이 빠진 채 고요해진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어 본다. 미안함과 고마움, 짜증과 기쁨의 모든 감정을 내 입술에 담아 격하게 쏟아부었다. 아이는 그저 잠을 자고 있다.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그렇게 오늘의 고해성사를 마쳤다.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웠다.

 

옆에 있는 이 아이는 어떤  실수를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사랑해야만 할 의무가 있는데... 저 건넌방에 있는 남편에게는 왜 똑같은 사랑의 굴레를 씌우지 못하는가. 그가  나에게 실수를 한 것은  절대 잊히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어 나를 옭아매는데... 

이 같은 두 사랑은 어디서부터 갈라진 까.






"남편" 혹은 "남자"

남편(남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때에야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자상하게 나를 챙겨줄 때, 살림을 도와줄 때,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줄 때... 그럴 때 나의 감정은 더 커졌다.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는 남편을 향한 감정이 줄어들고, 어느 때는 아예 소멸됐다.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 자체를 사랑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마이 갓...

그동안 내가 한 사랑은 무엇이었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무엇이었나...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캄캄한 방 안에 누운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사랑"했던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던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돌이켜보니 나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쥐어준 순간 결별을 고했었다. 나는 그것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 밤에 갑자기 나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식이라는 본능적 사랑 이외에 어떤 이성도 사랑해 본 적 없었다. 나는 오로지 그들의 역할을 사랑한 거다.

 



나는, 결코 어떤 누구도 감히 사랑할 수 없다.

그럴 주제가 못 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그것은 너무 편협하고, 작았다.

상대의 이름 석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미운 말을 던져도 반나절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사랑"이-

이성에게는, 또 남자에게는 절대로 이윤이 남지 않는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었다.



그러니 지금 남편이 아니라 다른 결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한다 해도 내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지 못한다면 나는 또 견디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의 이름(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 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를 무겁게 누른다.

나이 마흔둘에 사랑이 너무 어렵다. 두렵다.

과연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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