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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Nov 30. 2020

저는 아홉수 승무원입니다

뱀 눈을 가진 무당 아저씨

내년엔 사업을 할 거래. 너 그 회사 나오게 될걸?


아홉수는 흔히들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몸이 아프기도 하고 하는 일마다 미끄러지며 ‘아홉수 우리들’의 웹툰처럼 직장, 연애, 시험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그까짓 거 다 미신이야’라고 말했던 내게 벌이라도 주는 듯 올해 아홉수가 되던 해 , 유독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고 더 이상 비행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 2019년 11월쯤 그래, 정확히 1년 전쯤 마치 뱀을 연상케 하는 눈을 가진 용한 무당 아저씨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날은 마스크 없이 거리를 종횡무진하던 코로나 없는 11월의 어느 평범한 겨울날이었다. 연애에 한이 맺힌 터라 소위 그쪽 분야에? 정보가 빠삭한 친구의 적극 추천으로 논현동의 한 점집을 다녀왔다. 두둑이 현금을 챙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예쁜 버건디의 원피스를 입고 조신하게 자리를 앉자 나를 위아래로 쓰윽 훑으시더니 잠깐 앉아있으라며 곧장 주방으로 가시더니 허연 연기를 연거푸 내뱉으시며 담배를 뻑 뻑 피우시는 게 아닌가. 곧이어 박카스 한 병을 턱 하고 건네주시며 자리를 앉으시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 본인이 관성 사주인 건 알지?”

* 관성 사주:  명예와 권위를 뜻함. 귀격 사주라고 하는데 관성은 관운이니 공무원 군인 경찰 검찰 등 관직과 관련이 있음.

생년월일도 말한 적이 없는데  공책 한 권을 꺼내시더니 버억 버억 무얼 자꾸 쓰신다.


“일복이 있을 땐 연애가 잘 안되고 연애가 잘되면 일이 잘 안풀릴거야. 특히 내년엔 자꾸 너껄 한다고 할머니가 그러시네~... “


 다시 바삐 공책에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낙서 비슷한걸 계속 쓰시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씀하셨다.

자꾸 너껄 한대 너꺼! 너 사업을 할 거래
지금 다니는 회사 나오게 될거야
아마... 내년  10월에서 11월쯤 너꺼 한다고하시네


“네?? 저 지금 회사 좋은데.... 내년까지도 아마 비행하고 있을걸요? 혹여 그만두더라도 서른 살 즈음 그때 딱 그만둘 거예요~ 그때 한국에 아예 정착해서 안정된 연애할거에요!”


적어도 난 서른 살에 사업을 할 거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나이기에 잘 다니고 있을 직장을 때려치우고 당장 내년 스물아홉,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아홉수에 내 사업을 한다니.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아니 어쩌면 천재지변의 무시무시한 역병이 창궐해서 전 세계적으로 패닉이 덮쳐 항공업계가 대거 망하지 않는 이상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이 직업을 그만둘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승무원이라는 이 직업은 일과 휴식을 최고로 만끽하게 해 준 워라벨의 대명사였고, 전 세계를 비행하고 여행하는 낯선 설렘은 여전히 날 가슴 뛰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외국계 최대 메이저 기업의 직원이라는 뿌듯한 소속감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는 이 행복한 순간이 나름 우리들 인생의 황금기를 거머쥔 성공적인 루트를 밟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점집을 나왔고 어느덧  1년이 지난 지금

2020년의 11월의 매서운 겨울.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무섭게 강타했고 , 전례에도 없던 인원감축, 정리해고, 무급휴직 등의 기사는 보란 듯이 실현되었다. 휴직과 퇴사를 오가며 많은 시간이 주어졌고 긴 고민 끝에 결심했다. ‘서른엔 사업을 해야지’ 하고 노래를 불러댔던 그 사업을 앞당겨 시작해보기로.

그리고 정확히 10월 15일

쌍둥이 동생과 함께  ‘트윈룩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그날 뱀눈 아저씨의 말씀이 이런 거였을까.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만 했던 사업을 곧장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지금 이 사업이 대박이 터질지 어떻게 될지 더 깊이 물어볼걸 하는  괜한 아쉬움만 남는 요즘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가면 될것을 왜 머뭇거리냐고? 뱀의 눈을 연상케 하는 등골 오싹한 그 무당 아저씨의 말씀을 뒤로한 채 연신 콧방귀를 뀌며 문밖을 나섰던 그날 밤부터 이상하게 약 한 달간 계속해서 뱀꿈을 꾸어댔다. 어떤 날은 내 몸집만 한 커다란 구렁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형형색색의 오만 뱀들이 긴 혀를 내 두루며 나를 조롱하듯 악몽에 시달렸던 최악의 한 달이었기에..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밤잠을 설친다.

‘승무원’이라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전성기였던 바쁜 나날 속의 인생 제1막을 거두고 , 지금은 온전한 휴식과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는 요즘이다. 오전엔 글을 쓰며 오후엔 쇼핑몰 촬영을 나간다. 이토록 편안한 삶이라니! 지금은 쇼핑몰 사업 이외에도 책 출간 사업과 어학 교육 사업을 앞두고 있다. 고맙게도 내년엔 흰 소의 해다! 나의 태몽인 소의 해! 왠지 모를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비가 오고 난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밑바닥만 죽죽 내리 쳐대는 내리막길 인생만 있으리란 법도 없다.


더 이상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버리는 보수의 끝판왕을 자랑하는 항공사라는 집단속의 지긋지긋한 ‘직장인’이  아니라 나 자체가 주체가 되는 ‘내 사업’을 도전하는 인생 제2막을 앞둔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떨리고 행복하다. 불안한 떨림이 아닌 설레는 떨림이기에. 나에게 큰 변화와 ‘쉼’을 가져다준 2020년 덕분에 잘 준비된 서른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생각한다. '나쁜 일'이 다가오면 곧 ‘좋은 일’이 들어오겠구나 하고. 그리고 이놈의  ‘아홉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2020년이다.

나를 울고 웃게 만들어준 애증의 2020년이다.

사업을 도전했고 주변 환경이 크게 변했던 2020년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쉬어주고, 여지껏 걸어왔던 나의 길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쉼표의 해이다.


서른 살엔, 2021년의 흰 소의 해처럼 , 지금처럼 계속 나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꾸준히 도전하는 해가 되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쯤 다시 찾아가서 묻고 싶다.

그 뱀눈의 무당 아저씨에게.


                  지금 제사업, 앞으로 잘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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