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엄마의 손맛’ 하면 건강하고 담백한 맛을 떠올린다던데, 내게 있어 ‘엄마의 손맛’이란 조미료다. 엄마가 만들어 줘서 그 정성에 감칠맛이 더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진짜 조미료 이야기다.
우리 엄마는 요리할 때마다 조미료를 빼놓지 않는다. 주로 소고기의 감칠맛을 담았다는 그 ‘다시다’다. 엄마의 다시다가 만들어 낸 대표 요리에는 떡국이 있다. 나에게 최고의 떡국은 육수 없이 다시다와 소금만으로 간을 해, 우리 엄마의 최고 마무리 재료인 김 가루로 마무리된 떡국이다. 꼭 고기가 들어갈 필요도 없고, 슈퍼에서 막 사 온 떡국 떡에 다시다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엄마의 떡국만 보면 입맛을 다시게 된다. '떡국'이라는 글자에 마법을 건 수준이다. ⓒ 이현희
내 입맛은 “조미료가 진리”라고 처음 느낀 건, 어릴 적 큰 집에서였다. 우리 엄마와 큰엄마가 사이가 나빠지기 전까지 설날에 처음 먹는 떡국은 항상 큰 집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엄마도 분명 조리 과정에 참여했으나, 그곳은 큰 집이었으므로 큰 엄마의 손맛이 느껴졌다.
어려서 구체적인 조리 과정을 지켜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양짓살을 푹 익혀 육수를 내고, 그 고기를 잘게 잘라 떡국에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떡집에서 뽑은 가래떡과 열심히 부친 계란 지단 등등 흔히 엄마의 맛이라고 생각하는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떡국을 한 그릇밖에 먹지 않았다. 나는 먹성이 매우 좋다. 밥도 안 들어 있는 떡국 따위, 3그릇은 족히 해치울 수 있었음에도 큰 집이 떡국은 고작 1그릇밖에 먹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 떡국의 맛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설날 새벽부터 차례를 지내고 바로 아침을 차려야 하니, 두 엄마(큰 엄마와 우리 엄마)는 전날부터 육수며 계란 지단이며 고기며 땀 흘리며 준비했을 거야. 미안함과 부담스러움이 섞여 떡이 목에 걸리는 것만 같았다. 맛이 없었다.
설날의 떡국은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떡국이 좋았다. 워낙 떡을 좋아하는 엄마의 입맛을 닮아 한때는 만두도 마다하고 떡국 속 떡만 건져 먹었다. 아빠의 입맛을 닮아 만두만 먹는 동생과는 달리. 이런 나를 위해서 엄마는 설날이 아니어도 종종 떡국을 끓여 줬고, 매일 아침을 챙겨 먹는 성장기 먹보에게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어 주기도 했다. 떡국 먹으면 1살 먹는 거라던데, 그동안 먹은 떡국만큼 나이를 먹었다면 전 세계에서 나이를 제일 많이 먹은 젊은이로 소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요리인 만큼 반찬도 김치만 두고 먹어야 더 맛있다. ⓒ 이현희
내가 그토록 좋아한 우리 집에서 우리 엄마가 끓인 떡국. 그 맛은 부담스럽지 않다. 육수는 따로 내지 않고 쇠고기 다시다와 소금만으로 간을 하니 아침 식사로도 금방 낼 수 있다. 달걀은 지단으로 부치기보단 그냥 끓는 물에 퐁당 해서 휘휘 저어 주면 달걀국 같은 부드러운 맛이 되었다. 거기에 떡국용 떡을 넣어 잠시만 끓여 주고, 그릇에 내면서 김가루를 솔솔, 후추를 톡톡해서 끝낸다. 레시피는 그게 다다.
더 자세한 엄마의 떡국 레시피
– 늘 배고픈 큰딸 기준 1인분
01 물 550mL에 다시다 삼 분의 일 작은술, 소금 일 작은술을 넣고 팔팔 끓인다
02 물이 팔팔 끓으면 슈퍼에서 파는 떡국 떡을 국그릇에 가득 찰 정도로 양을 맞춰 넣는다.
03 대파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슷하게 또는 송송 썰어 넣는다.
04 계란을 퐁당 빠뜨려 젓가락으로 풀어준다.
- 물에 빠진 계란이 싫은 큰 애의 기준. 계란국 좋아하는 작은 애 것은 거의 풀지 않는다.
05 떡이 말랑하게 익으면 그릇에 옮겨 담고 김가루를 뿌린다. 떡이 안 보일 정도로 잔뜩.
06 큰 애가 맛있게 해치운다.
다 같은 날 같지만, 무려 다 다른 날이다. 하드에 떡국 사진만 100장. ⓒ 이현희
나의 눈 속에 우리 엄마는 요리 천재다. 뚝딱뚝딱 요리를 마술처럼 소환해내는데, 맛도 예술이다. 비록 시판되는 조미료로 완성되는 맛이지만, 고작 삼 분의 일 작은술밖에 안 되는 그것이 우리 엄마의 손에 닿아 요리되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진부한 문장이지만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 세상 흔하디흔한 조미료가 엄마의 손을 만나 이 세상 최고의 조미료가 된 거지.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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