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던지는 시간

<첫 번째 질문>을 읽고

by 눈부신 일상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 <첫 번째 질문> 중에서 -



구름을 품은 하늘, 살결을 스치는 바람, 땅을 적시는 비,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그리고 주어진 모든 순간을 당연하게 여겼다. 당연한 것에는 의문이 생기지 않았고, 궁금한 것이 없으니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하는 삶 대신 답을 ‘고르는’ 삶을 살았다. 오지선다형 문제에서 답을 고르는 것 정도의 고민으로 충분했다. 정답은 확실하게 존재했고,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은 쓸데없었다.


어느 날, 다양한 물음표를 품은 아이가 내 삶을 찾아왔다.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세상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아이들은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물음표와 상당히 결이 다른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허리를 굽혀야 했고, 아이의 작은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려야 했다. 낯선 질문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졌다. 길가에 핀 작은 꽃과 먹이를 들고 가는 작은 개미를 한참 바라봤다. 비 온 뒤 길에서 만난 지렁이를 눈살을 찌푸리며 피하지 않고, 손님처럼 반긴다. 하늘을 수놓은 구름에 이름을 지어주고, 날아가는 나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수없이 많은 질문 속에 아이들은 세상을 알아갔고, 물음표가 거름이 되어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이 쑥쑥 자랐다. 어느새 아이들의 질문은 내 삶 깊숙이 뿌리를 내렸고, 마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여보, 이제 정말로 첫째 체중 조절이 필요할 것 같아.”


아이들과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첫째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첫째가 복부에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었다. 6살 무렵이었나? 아이가 먹는 양이 급격하게 늘었던 것 같다. 체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선천적으로 발이 불편해서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했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니 살이 찌는 것은 당연했다.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의 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질문이 귀를 간지럽혔지만, 불편하고 귀찮아서 무시했다. 아이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누구보다 행복과 만족감이 컸고, 아이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인 나는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느꼈을지도.


하찮은 먼지도 쌓이다 보면 물건의 형체를 가린다. 막연히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으로 질문을 가린 시간이 어느덧 5년이 지났다. 고학년이 된 아이는 움직일 시간이 더욱 줄었고,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쉴 새 없이 유혹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변한 삶을 핑계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상황들을 조합해 보면, 아이의 복부가 티셔츠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찾고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고 외면하고 싶었다.


그동안 질문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마음의 속삭임을 듣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살찌게 한 주범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고, 아이를 망가뜨려다는 자책감으로 변질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자신이 먹는 음식을 온전히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아이의 음식을 제공하는 주역할을 맡고 있다. 밥 짓는 것이 귀찮아서 배달 음식을 시켜주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으로 냉장고를 채웠다. 서랍은 점저 다양한 과자봉지로 채워졌고, 아이는 쉽게 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음식을 권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리고 아이가 갑자기 먹는 양이 늘었을 대와 한창 내 삶이 힘들었을 때가 묘하게 겹친다. 엄마의 감정을 아이는 고스란히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은 아닐지. 담담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고, 솔직하게 답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몸이 바쁘게 움직인다.


혹시 상처가 될까 걱정이 되어서,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걱정과 달리 아이는 편하게 상황을 이해했고, 기꺼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도 도와주겠다고 함께 손을 포갠다. 가족들에게 앞으로 우리 집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야기하고, 간단한 규칙도 정했다. 서랍 속 과자를 치우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그리고 마트로 달려가서 이전과 다른 물건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알록달록 채워진 장바구니에 생명력이 가득 느껴진다. 그 활력이 내 마음까지 채운다. 창피하고 두려워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계속 외면했는데, 막상 펼쳐보니 별게 아니었다. 쌓인 먼지를 툭 털어내듯 간단했다.


**


질문은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질문하는 삶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답은 이미 내 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계속 질문하는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답이 서서히 표면 위로 떠 오르게 된다. 질문을 통해 찾은 대답이 ‘정답’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지금 들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성실하게 내 삶을 영위할 뿐이다. 또다시 질문이 찾아올 것이고, 다시 정성껏 답하면 된다. 무수한 질문을 통해, 삶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써 답을 찾지 않으니 질문이 훨씬 가볍게 느껴지고, 질문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날이 저무는 시간,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한강을 향한다. 내딛는 발걸음을 리듬 삼아 내면에 머무르는 질문을 툭툭 꺼내 본다. 선선한 바람이 어깨를 토닥이고, 솜 같은 구름이 포근히 보듬어준다. 어느덧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 핑크빛으로 연하게 물들어가며, 나를 응원한다. 그 모든 것을 품고 찬찬히 달리며, 세상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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