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채우는 가을을 꿈꾸다
매일 글을 써라, 열심히 읽어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봐라. <레이 브래드바리의 말>
-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p76 -
이번 가을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간단하게 해보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숫자 '3'이라는 숫자에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잉태와 출산의 의미를 품은 숫자 '3'은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는 우주의 숫자라고 한다. 작심삼일, 세 가지 소원 그리고 질문에도 3가지 답을 물으니 다른 숫자보다 더 친근하다. 회사에서는 퇴사하기 쉽다는 3년을 조심하라고 했다. 입사 후 약 3년이 지나면 업무에 능숙해지고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되니 변화의 가능성을 품게 되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극도의 혼란과 불안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떤 연유였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무너진 나에게 누군가 포근한 품으로 안아주고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지나고 나니 힘든 시간이 남긴 소중한 선물이 보였다. 이전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았고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시간을 쌓았다. 그런 시간이 흘러, 어느덧 3번의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초대하는 계절이 되었다.
무더위가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살결을 뽀송하게 어루만지면 반갑기 마련인데 벌써부터 떨어지는 낙엽과 앙상한 가지가 떠오르며 유난히 추워 몸을 움츠린다. 다시 일어선 후 맞은 '3'연차이기 때문일까? 올해 계획도 적지 못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숨을 더욱 깊게 한다. 시간이 조금만 느리게 흐르면 좋겠다고 바라며 냉철한 시간을 애꿎게 원망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로 머릿속이 뒤엉켜 엉망인데 뜬금없이 손님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불청객을 초대할지 말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문을 빼꼼히 열어서 인사한다. '호기심'이라는 녀석이다. 평소 그렇게 친하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호기심'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하필 마음이 복잡하고 지친 이 시기에.
본능보다 생각의 힘이 강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마음을 무시하며 머리가 주도하는 삶을 살았다. 내면 깊은 곳에 '부족하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어서 항상 더 채우기 위해 애쓰고 가진 것을 잃을까 마음을 졸였다.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을 채우려고 아끼고 애쓸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억울했다. 호기심은 부족한 자원을 빼앗는 방해꾼이자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라 호기심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당장 높은 성과를 내고 세상이 박수 보내는 곳에 효율적으로 집중해야 했다. 부족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감정과 본능을 차단했다. 해야 할 것은 넘쳐나지만 하고 싶은 것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삶이 너무 무거웠다.
다시 일어난 '3'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감정의 중요성과 본능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가치를 인정하자 비로소 부족한 자원을 투입할 의지가 생겼고 무참히 도려낸 감정과 본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깊은 내면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생각은 쉽게 떠 쳐 버릴 수 없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찾아온 호기심이라는 손님을 앞에 두고도 '올해 해야 하는 일'이 순간 떠올렸다. 낯선 손님을 문 앞에 두고 혼자 거창한 계획을 세우며 무거운 다이어리를 펼친다. 뜬금없는 행동에 당황한 호기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차!'싶어서 조용히 다이어리를 덮고 애써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웅성거리는 욕심에 집중할 수 없으니, 호기심을 채워 줄 단 '3'가지를 선택해 볼까?
계획이 없는 하루
머리에 자동 반응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이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하루를 계획한다. 할 일은 끝없이 복제되어 무서운 속도로 재생산되니 항상 분주하고 바쁘다. 문뜩 하루 종일 계획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마음 가는 대로 지내보고 싶어 진다. 일상 자체가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있어서 마냥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같은 행동도 시계를 확인하며 하는 것과 그냥 몸이 반응하는 것은 다를 것 같다. 책을 읽어도 읽어야 하는 책과 그냥 손이 가는 책이 다른 느낌이 듯. 우려되는 점은, 하루 마음대로 지냈다고 전날이나 다음 날이 할 일을 과도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머리의 반응이겠지! 단 하루일 뿐인데 가볍게 무시하자.
외할머니 방문
5살까지 외가 근처에 살며 외할머니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돌봐주었다. 아이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모든 것에 반응하고 기억한다던데, 기억 속에 남겨진 시간은 아닌데 온 몸이 그 당시를 기억하는 것 같다. 유난히 외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특별하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 한두 번 겨우 찾아가는데, 코로나 직전인 설에 얼굴을 보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가끔 전화를 하면 늘 나와 가족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따스한 사랑을 전해주는 할머니의 마음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최근 한 소설에서 강하게 할머니를 느꼈는데 가을바람에 그 마음을 실어본다.
혼자만의 여행
코로나 이후 타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회 곳곳에서 힘들다는 투정이 쏟아진다. 다행히 나는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잘 지낸다고 위로했는데,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 매일 쉬지 않고 주방일을 했고 집에서 머무는 가족을 챙겨야 했다. 나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퇴근과 주말 없는 노동이었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예쁘게 화장도 하고 '나'가 좋아하는 음식도 당당히 먹으며 모처럼 나로 서보고 싶다. 올망졸망 엄마를 찾는 세 아이가 많이 생각날 것이고, 나의 부재는 또 다른 여자인 엄마의 희생을 이끌겠지만 단 하루는 괜찮을 것이다.
얼떨결에 당장 생각나는 것을 적었는데 전혀 간단하지 않다. 당장 집 근처 있는 예전부터 궁금한 그 북까페부터 가보련다.
예고 없이 찾아온 호기심 덕분에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의무와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서 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즐거운 상상만으로 숨 고르기를 하게 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호기심'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운 마음을 허락하고 싶다. 우주의 힘을 거슬러 3에서 벗어나 300개쯤 적어볼까?
호기심이 건네는 속삭임에 마음이 살랑거리는 가을의 문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