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

<통섭의 식탁>을 읽고

by 눈부신 일상
"네 꿈을 먹는 짐승을 조심하라"

- 통섭의 식탁 82p -


긴 여름방학이 끝났다. 강렬한 햇살이 독차지하던 놀이터에 한결 부드러운 햇살이 머물며 아이들에게 뛰어놀 공간을 만들어준다. 사그라지지 않는 코로나도 아이들의 힘찬 발걸음과 활기찬 목소리에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하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멘 엄마들이 방학 동안 훌쩍 큰 아이들을 빙 둘러싸고 포진해있다. 눈은 아이를 쫓으며 친분이 있는 엄마 한 명과 나란히 서서 모처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옆 동네 친구 아들이 초3인데 대치동 수학학원에서 중1 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고민을 토로하더라고요. 저희 큰애(초6)가 중2 과정을 배우고 있는데 제가 뭘 알겠냐고 했네요.”


“하하하~~~”

“호호호~~~”


초점 없는 대화 속에 몇 번의 웃음소리만 오갔다. 곧 아이들은 각자 다양한 배움을 위해 놀이터를 썰물처럼 떠났다. 시끌벅적한 놀이터는 금방 조용해졌고 다시 햇살만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오랜만에 마스크와 옷이 홀딱 젖도록 신나게 뛰어논 아이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달리 내 마음은 불편했고 '선행학습'이라는 단어만 쓸쓸하게 남아 메아리처럼 되돌아와서 나를 괴롭힌다. 무거운 마음은 짐을 덜 곳을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흘러갔다. 평소와 같은 상황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별거 아닌 일에도 날카롭게 대응했다. 지난여름 감명 깊게 읽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비폭력 대화>라는 책이 책상 위를 뒹굴고 있다가 넌지시 나에게 말을 건다. “당신이 하는 다음 말이 당신의 세상을 바꾼다." (비폭력 대화 중에)


<비폭력 대화>는 2004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매년 많은 사람이 꾸준히 찾고 있는 유명한 책이다. 저자 마셜 로젠버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인간관계에 주는 엄청난 영향을 설명하며, 갈등을 해결하고 연민에 바탕을 둔 유대를 맺기 위한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제안했다. 비폭력 대화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상황에 반응 대신, 자신을 관찰하고 느낌을 의식한 뒤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도와준다. 공감하고 존중하며 욕구를 충족하게 되니 저항하고 방어하는 태도와 폭력적인 반응이 줄게 된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타인과 관계뿐 아니라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스쳤다.


책이 건네는 소리에 오래 머물리 못했다. 부정적 메시지가 입력되기 시작하자 내 삶을 판단하고 진단하기 위해 파헤치기 바빴기 때문이다. 멋지고 감사하던 내 아이는 갑자기 부족하고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고, 누구보다 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던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겨우 10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의 미래를 엄마의 불안과 걱정으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신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고 다음 날 등교하는 날이라며 일찍 침대에 누웠다. 밤 10시~


“엄마, 근데 우리 반 아이들은 등교 전날 새벽 12시나 1시쯤 되어서 잔데요.”


“그렇겠지. 보통 학원에 다니면 숙제가 많잖아. 학원 다녀와서 숙제하고 학교 숙제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니 못 자는 거야. 우리 아들은 오전에 학교 수업하고 나면 내내 TV 보고 게임을 할 생각만 하는데 어떡하니!!"



아이가 잠들고 홀로 남겨진 시간 매 같은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초4 수학 선행학습에 대한 정보를 찾아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인다. 바쁘게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책 한 권이 마우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비폭력 대화다! 마우스를 멈추고 무심히 책장을 들췄다.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는 간디의 말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아이를 앞에 두고 나와 내 아이를 저울질하고 있는 삶에 속삭인다. 잠들기 전 아이에게 했던 말이 되감기 되어 재생되었다. 그때 아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했다.


폭력이나 학대 같은 용어는 뉴스에서나 마주할 법하지 내 삶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서 ‘비폭력’이라는 단어가 과하게 느껴졌다. 폭력은 과격한 행동과 심각한 피해가 수반되어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판단, 비난, 비교의 말이나 강요, 강압, 위협의 말 등도 모두 폭력의 범주에 들어갔다.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불편하지만 나 또한 폭력을 가하고 당하는 일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비폭력 대화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세상을 따스하게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비폭력 대화>라는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판단과 비난이 익숙한 삶에서 비폭력 대화를 연습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의미 없는 마우스 클릭을 멈추고 <비폭력 대화>를 찬찬히 읽어본다.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 메시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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