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를 읽고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좀 더 나은 것'을 찾는 문제입니다.
-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15p> -
집을 뜻하는 ‘홈’과 놀이를 뜻하는 ‘루덴스’를 합친 ‘홈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루덴스에서 파생된 말로,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이다. 홈루덴스족은 단순히 집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홈카페나 홈시네마 등을 꾸미고 홈파티를 즐기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이미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에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집이 소통과 교류를 위한 곳으로 변할 것이며 홈루덴스를 변화의 큰 축으로 바라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해 홈루덴스족은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나 만남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집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에 머물고 있다.
결혼 전까지, 집은 단순히 휴식을 위한 장소였고 내부 공간의 쓰임보다는 집의 위치가 더 중요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고 집은 어두워지면 잠시 들러 편안하고 안전하게 쉴 수 있으면 충분했다. 최소한의 물건을 두고 최소한의 시간만 집에 머물렀다. 엄마가 되고,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세수도 하지 않고 거울 한 번 보지 않은 날도 부지기수다. 점점 집은 육아와 가사를 위한 공간으로 최적화되었고 공간이 뿜어내는 힘에 압도당해 집은 또 다른 노동의 현장이 되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답답하고 무미건조한 시간을 이어갔다. 창밖으로 넓고 다채로운 세상을 종종 바라보았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가슴에 훅 들어왔다. 유희하는 인간으로 살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매장에서 내려주는 커피의 맛과 같지 않지만, 손쉽게 집에서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기계를 샀다. 예쁜 식기에 커피와 디저트를 담아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즐겼다. 예쁜 운동복과 실내 운동화를 사서 집에서 운동하고, 피부관리 제품을 준비해서 매일 거울 속 나를 마주했다. 때마침 온라인 상에 다양한 취미 활동을 쉽고 간편하게 배울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비슷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놀이와 배움의 욕구를 채우며 즐기는 삶을 누리자 드디어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른 시기 홈루덴스족이 되어서 집에서 좀 놀 줄 아는 삶을 향유했다.
코로나 이후 집 밖에서 이루어지던 많은 활동이 집 안으로 이동을 했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홈루덴스의 삶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홈루덴스족을 위한 시장이 급성장하고, 상상하지도 못한 다양한 상품이 등장한다. 누구보다 반가운 소식인데, ‘홈’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될수록 그동안 즐기던 홈루덴스의 삶은 휘청거린다. 가족들이 집 밖 세상으로 떠난 시간, 홀로 남겨진 공간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하며 원하는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집은 퇴근도 주말도 없이 유례없는 노동을 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고, 손님은 떠날 생각이 없으니 답답함을 더해간다. 남편이 회사 대신 서재를 차지하자 겨우 마련한 내 책상에는 먼지가 소복하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방마다 자리 잡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번갈아 엄마를 부른다. 답답함에 배고픔을 채우는데, 가족들은 끼니가 되면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모인다. 태어나서 이렇게 밥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있던가! 많은 사람이 코로나를 피해 집을 찾고 폐쇄된 생활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위로할 때, 나에게 집은 강도 높은 노동의 현장으로 변했다. 하루 종일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생활하면서도 유난히 답답하고 지친 여름을 보낸다.
더운 여름 기어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떠나 밖을 향한다. 홈트가 대세라는데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삶을 묵묵히 달린다.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쨍한 햇살이 가득한 공간에 서니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삶이 스스로 선택하며 채워나가는 공간이라면 삶을 나에게 '좀 더 나은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홈루덴스이다. 세상의 흐름에 함께 한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집에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