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와 함께 한 여행
"더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좋아하는 것에 관한 질문이 너무 싫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한데 사람들이 자꾸 물으니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어릴 적 소풍에서 보물 찾기를 할 때 혼자서만 보물이 적힌 종이를 찾지 못해 당황했을 때 같았다. 가끔 여러 개를 찾은 친구가 쪽지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것은 나눠주는 사람도 없었다.
'호미로 막을 먹을 가래로 먹는다'라고 하는 것처럼 해결할 문제를 풀지 않고 오래 묵히면 반드시 큰 문제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짬뽕과 자장면을 선택하는 문제처럼 하찮게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것에는 한 사람에 대한 정체성이나 존재감이 담겨있었다. 자장면과 짬뽕이 별거 아닌 선택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인 불편한 문제는 큰 태풍이 되어 나를 집어삼켰다.
누군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단순히 질문을 많이 한다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태풍의 강도만 더 세지는 느낌이었다. 태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손과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발걸음과 사소한 손놀림으로 좋아하는 곳을 향해 조금씩 나를 움직였다. 이제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겨우 답할 수 있게 되었는데, '더' 좋아하는 것이라니!!
'더'라는 단어가 평온한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불쑥 찾아온 손님이 반갑지 않다. 애써 가꾸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 같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지금도 충분하다는 마음에 ‘더’에 대한 생각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또다시 해결하지 못한 생각을 무겁게 마음에 품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진 편안한 일상을 벗어나.
벌써 수 차례 수영복을 씻고 말리기를 반복했어야 하는데, 가을이 성큼 찾아와서야 겨우 수영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수영장이 딸린 숙소를 빌려서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자 갑자기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너무 반가워서 히죽 웃음 지으며, 가족들 몰래 '더'와 함께 은밀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 셋과 함께하는 여행은 또 다른 육아의 연속이다. 여행 중에 잠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대체로 멋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즐긴다. 이번에도 역시 청평호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들이 먹고 노는 동안 호수 근처를 거닐었다. 평소 잔잔한 호수는 막바지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요란한 소리에 이끌려 다양한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을 한참 바라보았다. 온몸으로 거침없이 청평호를 느끼고 즐기는 이들을 향한 부러움이 강하게 나를 울렸다. 멀리 유람선이 선착장으로 유유히 들어오고 있다. 유람선은 오래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 마음을 일렁이는 어떤 떨림과 울림도 없었다!
'유람선을 타고 경치를 즐기는 것이 좋다. 하지만 수상 레저를 즐기는 것이 더 좋다.'
'깨끗하고 가지런히 정리된 숙소를 좋아한다. 하지만 집이 더 좋다.
관람차를 타고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편안하게 구경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마음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더 좋다.
빼곡하게 여행 계획을 잡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계획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더 좋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곳에 가는 것이 더 좋다.
여행에서 자유와 해방감이 좋다. 하지만 혼자 보내는 새벽 시간은 지키는 게 더 좋다.'
‘더'에 대한 생각이 활짝 열리며, 고구마 캐듯 '더'가 줄줄 쏟아졌다. 무엇보다 나는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 충분한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힘들어도 직접 두 발로 걸어야 했고, 불편해도 몸으로 느끼고 싶어 했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저항하는 편이라 마음의 속삭임에 상당히 당황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새로운 도전에 남들보다 주저하는 시간이 길고 선뜻 뛰어들지 못해 더디지만, 확실히 직접 몸으로 경험할 때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을 느꼈다. 종종 한강을 수영하며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한강물이 더럽고 무섭게 느껴져서 손사래 쳤다. 높은 언덕을 낑낑거리며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을 보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도, 위험하고 힘들다는 생각에 선을 그었다. '더'에 대한 물음을 통해 조금 더 섬세하게 나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더'는 현실을 부정하고 무모하게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두리뭉실하게 대하는 삶을 정교하고 예리하게 다듬는 시간이다. 미처 바라보지 못한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섬세하게 관찰하는 시간이다. 고정되고 왜곡된 신념으로 한계 짓고 규정짓던 틀을 깰 수 있는 용기를 찾는 시간이다.
청평호를 바라보며 옆에 서 있는 둘째에게 말했다. 둘째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우리 내년에는 꼭 저거 타보자!!"
‘더' 좋아하는 것을 향한 꿈의 씨앗을 한 움큼 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일상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