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독서>를 읽고
자가 격리가 끝나면 1초도 집에 머무르지 않고 나가서 세상을 즐길 것이라 다짐한 아침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접하고 오전 내내 펑펑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어요. 한강에서 김밥을 먹고 놀자고 했는데 익숙한 식탁에서 꾸역꾸역 김밥 몇 개를 먹고 아이들 손에 이끌려 겨우 바깥 공기를 쐬며 힘을 냈어요.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요. 다음 날, 더 큰 충격이 삶을 무참히 삼켰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울었는데도 하루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는 상태로 처참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엄마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참 많이 울었네요.
평소 몸이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편이예요. 독하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픔을 이겨내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힘든 상황보다 그 상황 속에 무너진 나와 일상를 바라보는 것이 죽을만큼 싫었거든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은 아픔을 이겨내려는 의지조차 꺾어버렸고, 나약하고 초라하게 무너졌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앉아서 시간을 보낸 책상을 며칠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봤어요. 키보드를 두드릴 힘도 없더라고요. 책장을 넘길 의미조차 사라졌거든요.
무심히 흘러간 시간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억울해했습니다. 양파같은 과거는 들출수록 아프고 힘겨웠서 눈물이 났어요. 급기야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애쓴 모든 시간이 부질없고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정성을 다해 살아온 삶이 거짓처럼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속은 것 같고 누군가가 내 삶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실패가 이정표가 되고 시련 속에 계시가 있다’지만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큰 불안과 두려움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미래였어요. 앞으로 살아내야하는 삶을 쉽게 자신하고 다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아팠어요. 괜찮을 것이라 위로하며 쉽게 상처를 덮을 수 없으니 울면서 소리치면서 상처를 자꾸 쳐다보게 되더라구요. 끔찍한 상처 속에 그동안 숨겨두었던 욕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앞 날을 환하게 비추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절대 마주하기 싫은 삶은 보였어요. 지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자 어찌해야 하는지 흐릿하게 길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니 바라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상처받고 있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
상처받고 있다는 건
내가 사랑한다는 것.
그대, 상처가 희망이다.
-걷는 독서. 243p-
소중한 것은 잃기 전까지 가치를 절실히 알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무모한 믿음과 막연한 희망에 의지하며 상처를 무시하며 지낸 시간을 떠올리니 어리석은 ‘나’가 보였습니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후회하고 자책하거나 책망할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애써 부정하고 감추지 않고 가볍게 표현하며 살아보려합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무겁게 인정하고 나니 한결 삶이이 가볍고 편해졌어요.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물 한 모금 넘길 힘도 없었는데 마음을 가볍게 먹으니 걷고 싶어지더라고요. 몸 상태가 좋지않아서 남편에게 의지한 채 한강을 걸었어요. 탁 트인 곳에 서니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겠더라고요. 찬찬히 길을 걷다 보니 살아갈 수 있겠다는 강한 의지가 뒤따라오더라고요. 여전히 내일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작은 용기라도 내어 걷다 보면 길을 만들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오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 어딘가에서 다시 선택하면 되잖아요! 겁 많고 나약한 내가 어디에서 이런 무모한 용기가 생겼는지 참 기특합니다. 매일 나를 다독이며 단단하게 뿌리내린 시간 덕분에 시련 속에도 무참하게 짓밟히지 않고 꿋꿋이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허망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숨은 힘을 알게 되니 다시 책상에 앉을 힘이 생깁니다.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자의 것이니.
-걷는 독서. 501p-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펼치지 못하고 꾹꾹 누르고 있는 욕망도 끄집어낼 수 있었고요. 아닌 것 같은 길에 서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고 있었는데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용기도 생겼고요.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진솔한 삶을 살고 당당하게 나를 위한 것을 욕심내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아픔을 겪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많이 두렵고 불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참한 기억 속에 빠진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감당하기로 한 이상 견뎌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혼자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함께 하기에 용기가 더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희석되고 언젠가는 웃으며 편안하게 추억할 날이 올 것이라 믿어봅니다. 지금까지 힘든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노력 없이 그냥 주저앉아버리기는 열심히 살았던 삶에 미안합니다.
어떤 애씀 없이 그냥 놓아버리기는 정성을 다한 내 삶이 너무 소중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에 쉽게 미래를 단정하기는 나는 내 삶을 너무 사랑합니다.
힘들고 지친다고 삶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삶이 힘겹고 두렵지만, 나에게는 그 삶을 감당하고 살아갈 이유가 넉넉합니다.
길을 걸으며 삶을 절실하게 써내려가겠습니다.
좋은 날은 짧았고
힘든 날은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다.
그래도 삶은 나아간다.
-걷는 독서. 8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