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나는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 먼저 하세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하지 마라> 중에서
아이들은 새 학년 교과서가 선물이라도 되는 마냥 싱글벙글한다. 학년이 올라가니 학업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커지는 터라 나는 유난히 무거운 아이들 책가방을 받아 거실에 내팽개쳤다. 털썩 소파에 앉아 아이 영어 학습을 고민하며 읽던 책을 펼쳤다. 실용적인 학습 방법이나 명확한 가이드를 빨리 찾아 아이를 이끌고 달려가고 싶다.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과 달리 첫 질문 앞에서 당황하며 멈춰있었다.
“아이들이 영어 습득을 위해 지금 투자하고 있는, 또 앞으로 투자해야 할 비용, 시간, 노력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영어를 생각하면 원하는 목표는 없고 막연히 원하지 않는 모습만 가득했다. 내 아이가 이루었으면 하는 ‘영어의 끝’이 무엇일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나 자신도 평생 영어와 씨름하면서도 최종 목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처럼 뭐라도 하다 보면 될 것 같았다. 모국어도 쉽게 습득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라는 한 단어를 말하기 위해 아기는 수없이 듣고 말하기를 반복한다. 초등학교에 가서야 겨우 삐뚤빼뚤 글씨를 따라 적고 불혹이 되어도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모국어를 쓰는 사람 사이에도 격차는 엄청난데 외국어를 배운다면서 ‘그냥’ 덤비고 있었다.
체급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에게 덤비니 늘 무참히 깨질 수밖에 없었다. 실패는 고스란히 두려움으로 남아 불신과 불안을 키웠다. 내가 겪은 허술한 학습만 생각하며 영어 교육을 무작정 불신하면서도 이미 다른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는 상황에 자주 흔들렸다. 어차피 보통의 노력으로 넘을 수 없으니 함부로 시작할 수 없다며 신포도를 보는 여우처럼 합리화했다. 두려움은 무작정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 안에는 채우지 못한 큰 욕망이 숨어있다. 조금씩 채워간 욕망으로 현재가 존재하고 앞으로 채워갈 욕망의 합이 미래의 삶이 될 것이다. 욕망은 피할 수도 숨길 수 없으니 진짜 원하는 것을 가려내고 제대로 노력해야 한다. 성장은 그 과정에서 만나는 뜻밖의 선물이다.
세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개인의 활동 무대는 점점 넓어지니 세계 공용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매번 애먼 아이만 상처를 받았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영어의 필요성과 학습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묻고 생각한 후에 실천해야 한다. 언어란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문화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을 모두 품고 있다. 의사소통의 도구 그 이상이다. 모국어 외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반경을 확장하는 정도를 넘어 다른 차원의 원을 갖는 것이다. 영어가 자유롭지 않아서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기만 하던 답답하고 아쉬운 상황이 떠오른다. 내 아이는 세상의 다양한 삶을 한계 없이 경험하고 주저 없이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게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영어의 끝은 우주여행 그 이상이다.
‘영어의 끝’을 만났다는 한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목표를 덜컥 적었다. 목표를 세웠으니 열심히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가능성과 현실성을 따져보니 확신보다 의심 쪽으로 저울이 기운다. 더구나 매일 목표를 향해 걸어갈 사람은 아이인데 아이가 선택한 목표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아이의 성향과 환경이 다르므로 누가 성공한 길을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다. 아이 스스로 욕심낼 수 있도록 설명하고 공유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 열풍 속에 ‘무작정 일찍 보다 제대로 꾸준히’ 하는 자세가 더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교육의 적기는 이론이 아니라 아이를 관찰하며 함께 정해야 한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선택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어쩌면 ‘영어의 끝’을 마주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기계에 대체되는 사회를 살아갈 아이에게는.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미리 계획을 설명하고 할 일을 정해두면 아이가 오히려 약속을 잊지 않고 더 잘 지켰다. 이런저런 소식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엄마다. 아이는 확신 없이 흔들리는 엄마를 금방 알아채고 함께 흔들릴 뿐이었다. 엄마가 흔들리지 않은 확신과 믿음을 품고 있다면 아이도 단단한 마음으로 안정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요동치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궁리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 보자 다짐하며 목표를 한 줄 더해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