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점점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보인다는 것. 그거야말로 뭔가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p.141>
내 나이 40대, 첫째와 함께 시작한 엄마나이도 10대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나의 인생도, 엄마의 삶도 허리까지 달려왔네요. 성격도 급하고 손발이 빠르다 보니 무척 부지런하게 바쁘게 살았어요. 요즘은 체력이 떨어져서 금방 피로감을 느끼게 되니 마음껏 삶을 욕심낼 수 없어 답답하고 우울 해지 기곤 해요. 넘어설 수 없는 한계계 앞에서 진짜 원하는 것과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한껏 비우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가꾼 방처럼 삶이 한층 명료해지고 마음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나쁘지 않아요.
아이들 용품으로 가방을 채우기 전까지 가방에는 거울이 들어 있는 화장품 파우치가 항상 있었습니다. 화장을 고치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거울을 봤으니까요. 엄마가 되면서 나를 볼 시간을 쪼개 아이의 얼굴을 더 많이 쳐다봤습니다. 코로나 이후는 대부분 집에만 있고 외출을 해도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리니 거울은 더욱 멀어졌죠. 아이들 시력 교정용 렌즈를 끼워주기 위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오랜만에 나를 봅니다. 얼굴에 주름도 늘었고 오른 눈꺼풀도 살짝 처져 보여요. 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들추었는데 흰머리가 한 움큼 보이네요. 유난히 흰머리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아직은 흰머리가 많지 않아서 한두 가닥 보일 때마다 뽑아주면 충분했어요. 거울을 보지 않았던 시간이 흰머리를 자라게 했네요. 렌즈를 끼고 자기 위해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리지만, 흰머리가 먼저입니다.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족집게를 들고 눈을 최대한 위로 치켜뜬 채. 남편과 큰아이가 번갈아 와서 물어봅니다.
“여보, 내가 뽑아 줄까?”
“엄마 내가 해 줄까요?”
“아니야! 앞쪽에만 조금 있어서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어!!”
좋아하는 과자를 빼앗기는 아이처럼 바락 대꾸합니다. 사실, 머리 뒤쪽은 내 눈으로 전혀 확인할 수 없으니 흰머리가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부분만 보며 내가 할 수 있다고 우겼습니다. 아직 흰머리 뽑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속은 시원한데 머릿 밑이 발갛게 되어 아파서 살살 문지릅니다. 마음을 토닥이듯이요.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지면 혼자서 흰머리 뽑는 일도 할 수 없게 되겠지요? 어릴 적, 부모님도 자신의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머리카락을 뽑는 느낌이 재미있었지만 귀찮기도 했어요. 부모님은 뽑은 흰 머리카락을 세어 용돈을 주곤 했어요. 곧 부모님은 염색을 했고 용돈 벌이는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가끔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엄마의 흰머리에 염색약을 바릅니다. 아빠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으시고요. 새하얀 머리가 무척 잘 어울립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이 웃고 행복합니다.
인생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며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에 집착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서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물속에 잠겨 조용히 생각해보니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많았고 지금 내 삶이 만족스럽고 좋아집니다. 침잠의 시간은 지금 누리는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 보드라운 살결 그리고 그들과 뛰어놀 수 있는 시간. 잠시 숨을 참고 물속 풍경을 즐겨도 좋겠다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삶에 집중하기 위해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고 품을 수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도 진짜 좋아하는 삶을 위한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