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자본주의자>
"이건 우리의 삶이잖아. 외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직접 해야 하는 일이야. 우리 옷이고, 우리 책임이야. 남한테 이걸 빼앗기는 거야.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만의 삶은 우리가 살아야 하잖아. 우리에게 돈이 무한정 있다고 해도, 아이 키우는 것도 남한테 맡기고,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맡기고, 생각하는 것도 맡기고, 그러면 우리가 왜 사는 건데?"
<숲 속의 자본주의자> p.113
“여보,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야?”
<비폭력 대화 > 모임 과제 때문에 지방 출장을 가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조차 가족에게 자주 하는 말이 금방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 고민하는데 2분 만에 답장이 왔다. 간결한 세 문장, ’ 밥 먹어, 청소해 줘, 언제 와?’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호기심이 생겨서 큰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아이는 남편보다 신중하게 며칠을 고민해서 신중히 답을 했으나 역시 ’ 밥 먹어’는 피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고작 밥이라니!’ 순간 허탈감이 몰려왔다. 자주 하는 말을 곰곰이 들여보니 현재 삶에서 중심 역할과 중요한 가치와 욕구가 보였다. 절대 하찮지 않다.
결혼 후, 꽤 오랫동안 내 몫의 삶을 타인에게 외주 했다. 신혼 때는 대부분 회사에서 지내느라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드물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다른 가족이 주방을 책임졌다. 셋째가 태어나고부터 매일 저녁 도우미가 방문했다. 요리와 설거지 중 설거지를 선택할 정도로 요리를 꺼렸다. 아이 이유식을 위해 겨우 요리를 했을 뿐 시금치나물조차 무쳐본 적이 없었다. 장만 봐 두면 누군가 뚝딱 냉장고를 채워주는 삶은 편했지만, 점점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건강은 중요한 가치이고 먹는 음식은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귀찮다고 남에게 넘기고 나니 삶의 중요한 부분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삶이 점점 부끄러워졌다. 나 자신에게.
변화는 쉽지 않았다. 망설이는 사이 젖을 물던 막내가 뛰어다닐 만큼 컸고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코로나에 매일 외부 사람이 집을 찾는 것이 더욱 불편하고 예민하게 느껴졌지만 도우미 대신 그 자리를 맡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시간에 원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망설여졌다. 하지만 더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타인에게 의지한 채 살 수 없었다. 내 삶에서 스스로 소화하고 당당하게 책임지고 싶어졌다. 두렵지만 용기를 냈다.
이제는 끼니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주방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한다. 코로나 3년 차, 삼시 세끼도 해결할 힘도 생겼다. 그렇다고 대단한 요리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요리보다 설거지가 좋다. 멸치볶음은 매번 태우고 시금치는 오래 삶아서 물러지고, 레시피를 수없이 봐야 한다. 책임만큼 더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잘’ 살고자 하는 강박을 벗어야 했다. 절대 안 된다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과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고, 반찬 가게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만 생각하며 그저 살아가다 보니 오히려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갔다. 이제 주방에는 도우미에게 부탁하던 반찬 목록 대신 요리 레시피가 적힌 메모가 쌓여간다.
최근 남편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큰아들도 체중 관리가 필요하게 되면서 건강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동안 내 삶을 회피하지 않고 충실하게 걸어온 덕분에 불쑥 찾아온 위기가 두렵지 않다. 대단한 결심이나 변화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외부에 의지하거나 위탁할 필요가 없다. 새롭게 펼쳐진 일상에 적절한 방법을 찾아서 즐기듯 차근차근 걸어가면 된다. 삶의 가치가 변해서 다시 삶의 일부를 외주해야 한다면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탁할 것이다. 삶을 만들어가는 주인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