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옥수수가 그리운 계절이다

by 눈부신 일상

나는 옥수수를 참 좋아한다. 옥수수가 한창 나는 계절이면 옥수수를 상자째 사서 온종일 삶는다. 일 년 중 단 하루 곰솥이 세상 구경을 하며 온 집에 옥수수 냄새를 내뿜는다.


찬 바람이 불고 다시 여름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자,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둔 옥수수가 생각이 난다. 얼려둔 옥수수를 꺼내서 아이들 간식으로 따뜻하게 쪄서 식탁 위에 올려둔다. 하지만 아이들은 옥수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양손에 뜨거운 옥수수를 던져가며 알갱이를 따서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아이들 손에 옥수수 알갱이가 소복이 담긴 그릇을 건넨다. 아이들은 그릇을 꿰차고 그제야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다. 금방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한 그릇 더 달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육아에서 엄마의 기다림이 중요하다. 물론 나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옥수수 알갱이 따는 것 정도는 기꺼이 엄마가 해주고 싶다. 아이가 옥수수를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스스로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복이 담긴 옥수수 알갱이를 옴싹 옴싹 먹으며, 엄마의 사랑도 넉넉히 먹었으면 하는 사심 때문이다.




내 엄마도 내가 어렸을 적에 공부하라는 말만큼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다 할 거니 지금 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며, 내가 집안일을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엄마 곁에서 밀어냈다. 엄마는 자신의 남편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주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회사일, 집안일 그리고 세 아이 육아까지 도맡는 엄마를 그냥 바라보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종종 주방에 가서 엄마의 일손을 도우려 하면 엄마는 내 손에서 고무장갑을 빼앗았다.


대학에 가서 독립을 하니 엄마의 집안일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집안일로 실랑이를 하지 않게 되자 엄마는 나에게 다른 말을 반복한다. 엄마가 생활비를 보내 줄 테니, 괜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당부를 했다. 엄마는 내가 공부에 소홀할까 봐 학비와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었고, 나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공부의 범위에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이어갔다. 이제야 엄마는 그 당시 경제적으로 정말 힘들었다고 웃으면서 고백한다.


다 큰 아이들을 위해 옥수수 알갱이를 따는 정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벅찬 집안일과 힘든 경제 상황에서 단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엄마는 당신에게 힘들고 벅찬 만큼 더욱 그 짐을 자식과 나누기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엄마가 지켜주고 싶어도 지켜 줄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곁에 있을 때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더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성장했을 때는 내가 그 일을 당연하게 해낼 것이라 믿었다. 설령 미리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라도 그것은 미리 알려주고 싶지 않은 어른의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더 어리고 엄마가 더 강할 때는, 오히려 그 단 한 사람의 힘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뻔한 잔소리와 과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엄마의 견고한 울타리가 나를 연약하게 만들고, 삶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했다. 어느덧 나는 엄마가 되고 엄마는 작고 연약해졌다. 이제야 엄마가 전해준 단 한 사람의 사랑이 점점 더 강하게 내 삶에 전해온다.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어린 내 손에서 고무장갑을 빼앗으며 어차피 할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일을 매일 지겹도록 반복한다. 물론 그 삶에는 행복과 사랑이 넘치지만, 그만큼 짜증과 다툼도 흔히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마음 덕분에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돌보고, 가능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내 삶을 조심스럽게 대하며 살아간다. 상처가 반복되면 살결이 바뀌고, 깊은 상처는 영원히 흉터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




요즘 우리 사회는 실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실패의 가치를 꽤 강조한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만큼 분명 보이지 않은 많은 상처가 남는다. “상처 받지 않을 거야!”,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두 손 불 끈 쥐며 다짐한다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실패를 선택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처와 실패를 당연한 듯 가볍게 넘기지 않고 섬세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다독이며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지 않을까?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의 권영애 선생님은 “한 사람에게 받은 깊은 존중과 사랑, 그것이 평생을 살아 낼 마음의 힘이 된다”고하며 사랑과 단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사람을 살아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오직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연고와 연고를 바르는 손길이 필요하다. 누구나 연고를 바르는 부드러운 손길을 경험하고 믿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연고를 바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너무 작고 연약해서 손가락을 살짝 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아이가 훌쩍 커서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고등학교에 가면 밤늦게까지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엄마를 떠나 어떻게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그럴 때면 엄마가 내 손에 고무장갑을 빼앗듯 아이에게 말한다. 지금은 엄청 큰일처럼 느껴지지만, 키가 커지면 마음도 함께 커진다고, 그러면 큰마음으로 그 일을 기꺼이 해낼 수 있게 되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마냥 좋은 어린 시절이 두려움 대신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길 바라는 마음에 어른의 세계를 잠시 숨기고 싶다.


나는 늘 연고를 준비하고, 종종 아이들의 상처에 부드럽게 연고를 발라준다. 살결에 스며드는 연고에 앞으로 아이들이 마주할 수많은 상처와 실패에 자신의 삶을 잘 지켜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본다.


당분간 나는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뜨거운 옥수수 알갱이를 따는 단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시간에 나의 엄마도 추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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