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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Feb 06. 2023

물처럼 흐르며 춤추는 한 해를 꿈꾸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를 읽고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떠올리며 산다. 바쁜 오늘 때문에 당장은 급해 보이지 않는 일, 사랑이나 행복 같은 일들은 내일로 잠시 미뤄둔다. 하지만 내일이면 너무 늦을 수 있다. 모든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오늘 당장 사랑하는 일, 오늘의 행복을 참지 않는 일이다. 오늘이 세상의 첫날인 것처럼 온통 나와 당신을 사랑하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행복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마음뿐이기에.”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중에서-


아이들이 겨울 방학을 시작했다. 봄방학 없이 죽 이어지는 긴 방학은 곧 종업식이 되었다. 약삭빠른 둘째는 학년이 끝났으니 겨울 방학 숙제를 할 필요 없다며 신이 났다. 아이들은 1년 동안 사용한 물건과 과제물을 책가방 가득 넣어와서 거실에 쏟아부었다. 쓰레기통으로 가기 전, 엄마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1년을 들춰보다 보니 어느새 엄마 미소가 흐뭇하게 번진다. 눈 깜짝할 사이 학년이 바뀌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새해를 실감하지 못해 책장 한 구석에 거꾸로 꽂혀있는 작년 다이어리에 눈길이 갔다. 먼지가 쌓인 다이어리는 여백의 미를 뽐내며 미완성의 새해 목표를 숨기고 있었다. 조각난 기억에 깊은 한숨이 났다. 실망과 자책이 범벅된 채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할 수 없었다. 몸을 낮추어서 걸어온 걸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지?’


새해가 되면 꿈꾸는 한 해를 한 단어로 표현하고 어떤 시간을 보냈나 연말에 확인한다. 산만한 삶 대신 정갈하고 여유로운 삶을 바라며 한 단어로 ‘몰입’을 선택했다. 드문드문 남은 기록과 기억으로 어수선한 지난 시간을 애써 펼쳐보았다. 가만히 바라보며 점을 잇다 보니 흐릿한 선이 보였다. 작년은 코로나가 앗아간 가장 소중한 운동하는 일상을 되찾았고 이전보다 더욱 활기차고 풍성하게 그 시간을 누렸다. 한강 둘레길을 밤새 42km 걷고 생애 첫 10km 마라톤을 완주하고 수영도 연수반으로 진급했다. 상상도 못 한 놀라운 경험으로 조금 더 도전적인 내가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건강 악화로 불안과 공포를 견뎌야 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꾸렸고 남편과 더불어 온 가족이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다. 아프면서 겪은 크고 작은 갈등으로 가족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오늘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을 누리고자 애썼다. 건강에 몰입하며 무척 바쁜 하루를 살았고 건강에 푹 빠진 덕분에 나머지 꿈은 흐지부지 잊혔다. 손가락 사이로 흐른 모래알만 보며 후회하고 실망했는데 손바닥을 펼쳐보니 크고 눈부신 진주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새로운 한 해를 살아볼 힘이 생겼다. 


‘올해는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 가방을 정리하다가 동그라미에 줄을 긋고 나눈 시간별로 할 일을 적은 ‘방학 계획표’라 크게 쓰인 종이를 보았다. 벌써 방학을 1주일째 보내는데 계획표의 방학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 급기야 종이조차 사라져서 아이에게 따질 수도 없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족쇄 같은 계획이니 없는 편이 나을까. 아이들의 방을 작은 원에 욱여넣지 않고 사랑과 행복으로 무한히 뻗어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한다. 보이지 않는 내일을 걱정하며 학원 버스에 몸을 싣는 대신 따뜻한 이불속에서 귤을 나눠 먹으며 깔깔 웃는 시간을 꿈꾼다.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울 때, 많은 시간 함께 보내며 평온한 겨울을 보내길 소망한다. 해야 할 일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마음껏 꿈꿀 수 있길 기대한다. 이제야 방학 계획표가 마음에 쏙 든다. 


아이들 틈에서 나도 새해 다이어리를 펼쳤다. 쫘악. 소리마저 경쾌하다. 건강과 가족 그리고 쓰는 삶이 잘 어우러진 한 해를 꿈꾸며 한 단어를 궁리한다. 한 해 밑그림을 스케치하다 보니 작년과 비슷해서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루의 대부분이 이미 정해진 일상으로 굴러가기에 다른 바람을 넣을 공간이 없다. 꾸역꾸역 목표를 더하며 삶을 통제하려 애쓰는 대신 지금 삶과 함께 춤추며 물처럼 흘러가면 좋겠다. 간간이 내 품에 던져질 뜻밖의 선물에 감사하며 삶을 좀 더 믿고 나를 맡겨봐야겠다. 작년 다이어리에 써둔 글귀를 찾아  새로운 다이어리 앞장에 다시 적으며 새해 목표를 대신한다. 


느긋하되 게으르지 않게

바쁘되 산만하지 않게

자유롭되 흐트러지지 않게   -이정현, <함부로 설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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