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Nov 21. 2022

더운겨울을 기어코 만나게 되었다는 것

적어둔 글이 전부 날아갔다.

화가 났다기 보단 잠시 분통했다.

그래도 뭐 할 수 없다. 이런 일에 화를 오래 내는 일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화를 오래 내지 못한다.

화를 내면 내가 글을 다시 적어야 하는 시간에 화를 내야 하는 시간이 추가되는 셈이니, 효율이 배로 낮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글을 또 써내기 싫어 주제를 완전하게 바꾸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잘되었다고도 조금 생각한다.  방금의 글은 적으면서 아팠으니, 언젠가 읽으면서도 나를 슬프게 만들었을게 분명했다.

나중을 위해 오히려 좋은 거라고 정신승리도 마쳤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누군가 틀어놓은 뉴스를 보게 되었다.

절로 고개가 저어질만큼 요즘의 사회는 참 시끄럽다.

국가와 정치에 사람과 삶이 소외된듯해 외로움마저 느껴진다.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짜낸 목소리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현실을 목격했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앞뒤 없이 이 문장만을 본 게 전부였음에도, 순간적으로 목이 메어 왔다.

사회를 위해, 후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그 목숨들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많은 것들을 잃고도 왜 사회는 나아가지 못할까.

왜 계속해서 같은 희생을 마주하게 할까.

그 사실이 매번 한스럽다.

열 걸음 나아가고 아홉 걸음 뒷걸음질 쳐도 결국 한걸음 나아간 거라는 어떤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나, 그런 속도의 나아감으로는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힘 합쳐 열 걸음보다 더 빠르게 멀리 걸어도, 이미 늦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또 다른 계기는 지금의 날씨였다.

11월 수능날이 너무 포근했다. 오늘도 여전히 모기가 자주 보인다.

12월 초까지 더운 겨울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 북극진동을 인해 찬 공기가 북극에 갇히게 되어 한반도로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지 않아 그렇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가 기후위기임은 자명하다.


올여름에도 우리는 지구가 유례없는 폭염 속에 끓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2022년, 7월의 어느 날 지구의 최고 기온은 45도. 1950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고 한다.

유럽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스페인에서만 일주일 만에 36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알프스 산맥의 빙하마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영국 역시 40도에 달하는 폭염으로 기존의 기록을 1.6도 경신했고, 인도에서는 50도 가까운 기온으로 하늘의 새가 날다가 추락하는 일마저 벌어졌다고.

지구의 이상기온은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Wet-bulb temperature, 한국어로는 습구온도라고 하는데, 올해 이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기온만큼이나 중요한 습도는 인간이 실제 '열'을 경험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의 어떤 곳의 기온과 습도는 인간의 생존 가능성 임계값에 근접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2010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이 35도의 습구온도에서 최대 6시간 생존 가능하다고 하는데, 최근의 연구결과에서는 임계 습구 온도가 31.5도에 가깝다고 나타났다고.

그리고 올해 7월 어느 날, 영국의 습구 온도는 최대 25도였다고 한다.

열과 습도의 조합은 상상 이상으로 인간의 목숨에 치명적이라는 말이며, 어떤 날의 날씨에서 우리는 6시간을 생존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 사실이 문득 무서웠다. 6도가 올라가는데 얼마나 걸릴지가 우려되었다.

우리 세대야 어찌어찌 살겠다만, 그다음은 정말 모르겠다.


세계 곳곳의 지역 기온이 치솟고, 타는 듯한 여름이 일상화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기후재앙은 이것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겐 생소한 이 더운 겨울도, 앞으로는 자연스러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겨울이 겨울답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봄 우리가, 또 생태계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르긴 하지만 자연재해, 식량난 등 광범위한 재앙의 모습일 것이라고 한다.

많은 것이 무섭지만, 특히나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는 더더욱 무섭다.

대처할 수 없는 와중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게 되기에.

지구를 응원하지만, 이기적 이게도 지구가 이 땅의 생명들을 너무 고통스럽게 벌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더운 11월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삶은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