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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13. 2022

매력 있는 글을 쓰는 사람

오늘 갑자기 시작하게 된 책의 제목은 [아무튼, 노래]이다.

이슬아 작가의 문장이 읽고 싶어 시작했다.

92년생 작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작가는 글을 술술 쓴다.

사실 그렇게 쓰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읽는 사람이 그렇게 썼다고 느끼도록 쓴다.

문장이 수월하고 편하고, 심지어 재밌다.

무언가를 읽으면서 울기보다 웃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해내는 작가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적을 수 없는 류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가를 좋아한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쓰윽 드러낸 이런 아래 같은 문장이 그녀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녀의 문장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명확한 답을 건네기는 애매하나, 읽다 보면 분명 한 번쯤은 웃음을 뿜게 되며, 이내 흠뻑 빠지게 되리라고 단언하며 추천할 수 있다.


[아무튼, 노래]는 노래에 대한 글이라고 한다.

작가이며 노래와 무관한 인생을 살지만, 노래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억지스럽지 않고 매끈하게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렇기에 추천한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이야기를 써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혹은 그냥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정박을 잘 타는 사람이 엇박을 못 탈 수는 있어도 엇박을 잘 타는 사람이 정박을 못 탈 수는 없었다. 엇박적인 사람이란 정박과 엇박 모두를 가지고 노는 이를 뜻했다. 향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노래 교실의 다크호스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 문장에서 향자는 그녀의 외할머니다.

노래교실에서 박자를 가지고 노는 그녀를 엇박적 인간이라 이름하며 그녀를 이야기할 때의 표현이 신박하다.

또 이 작가는 본인의 부모와 조부모님의 존함을 그대로 적어두었는데, 그게 이 사람의 삶을 더 소설같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본명은 호칭보다 솔직하며, 그대로기에.


그사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데 아주 중요한 걸 터득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몹시 갈 길이 먼 듯했다.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언제나 무언가를 계속하게 한다.
한 달 뒤부터 목 선생님에게 정식으로 레슨비를 내고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스승은 이렇게 페이스북 메신저 창처럼 예기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는 배우고 싶은 걸 망설이지 않고 배우기 위해 평소에 돈을 열심히 벌었다. 잘하고 싶은 일에는 무릇 네 가지를 써야 한다. 시간, 몸, 마음, 그리고 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계속 나아가게 만든다는 말이 인상 깊다.

주저앉지 않고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 하나같이 같은 생각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세상엔, 적어도 잘 되는 것에는 정답이 있는 것도 같다.

잘하고 싶은 일에 써야 하는 네 가지도 공감했다.

시간 몸 마음 그리고 돈. 결국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네 가지를 내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럼 당연히 잘해지겠지.


무대에서 노래하는 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프레디 머큐리는 대답했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틀리려고 해도 틀려지질 않아.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 있거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 그 대답은 나를 너무 놀라게 한다.
나라면 정확히 반대로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안 틀리려고 해도 꼭 틀려버려. 나는 내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 그게 너무 두려워.”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를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도저히 프레디 머큐리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나는 그래서 이 작가의 글이 매번 신기하고 새롭나 보다.

책을 읽을수록 참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돈을 받은 프로이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고 무대에 섰다. 과거의 무대들이 힘을 모아 허리를 펴주었다. 살면서 서본 누추한 무대, 커다란 무대, 실수한 무대, 알몸이었던 무대, 누워 있었던 무대, 입을 꾹 다물었던 무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던 무대가 알게 모르게 내 뒤를 지탱하고 있었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던 무대가 알게 모르게 내 뒤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문장에 순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었던 나의 20대가 알게 모르게 나의 30대를 40대를 50대를 지탱해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게 덜 억울해졌다.

미리 적립해두는 적금 같이 느껴졌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하는 고생이, 실패가 잃을 것도 적고 회복할 체력도 넉넉할 테니. 젊으면 젊을수록 좋은 게 아니겠나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젠가 이 경험들이 내 허리를 꼿꼿하게 펴주겠지. 하는 믿음으로 견뎌내야지. 버텨봐야지. 생각했다.

이 책의 독후감도 투비 컨티뉴. 할 예정이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기에, 온전히 하루를 즐기기 위해 남은 책은 내일로 미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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