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Jan 21. 2023

스물아홉살 생일을 앞두고 퇴사를 말했다

어느덧 스물아홉 살.

그리고 6년 차 직장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한 것도 이직이 계획되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물가는 연일 치솟고, 트위터 직원 80%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이 불경기에, 65세를 보장해 주는 공공기관의 일자리를 내손으로 놓겠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제 나는 더 조급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 조급함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이 퇴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건 필연적으로 나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있어야, 다른 일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믿어왔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 더 신중하게 안전한 선택들을 해나갈 수 있다는 말에 여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직장에 머무는 6년간 그러지 못했다.

'6년간 하지 못했던 일을 7년째는 8년째는 9년째는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였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메타인지를 재직 6년 차에 접어들고서야 비로소 해낸 것이다.

그래서 퇴사를 선택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내년에, 내년에 하지 않으면 그 후년에 하게 될 것이 분명한 이 퇴사를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오늘 회사에 퇴사를 말했고 그로부터 세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글을 적고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여전히 왔다 갔다 하기에, 흔들릴 때마다 보려고 남겨두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글로 퇴사를 배워보려 했다.

퇴사에 관한 글과 기사등을 작년 가을부터 열심히 찾아 읽어오며 느낀 건, 퇴사는 정말 정답이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선택이 그렇겠지만 더더욱 많은 갈래로 나뉘는 퇴사 이후의 사례들은 나를 정말 헷갈리게 만들었다.

다만 퇴사를 고민해도 되는 시점에 대해서는 공통된 견해들이 있었는데, 이는

회사와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 때,

이 회사 안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 때,

나의 건강이 무너지고 있음을 인지할 때. 였다.

나는 이중 두 번째에 해당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스트레스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액션을 취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핸드폰 바탕화면에 적어둘 만큼 공감했으면서도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나 자체가 안전한 상황에서 도전까지 할 만큼 의욕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했던 건 의지나 결심 같은 것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뜨거운 맛이 피부로 느껴져야만이 행동하는 몹시도 인간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도.. 물론 같은 인간이지만 그는 저렇게 살았나 보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액션을 취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많이 먹는 사람이 살이 찌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일일테니 말이다.

여하튼, 이 문장을 안지 일 년도 더 지난 시점에 드디어 결심했다.

더 이상 하루 9시간, 성장하지 못하는 기분을 느끼게 나를 놔두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책 [부의 추월차선]도 내 퇴사에 지분이 있다.

서행차선을 벗어나 부와 자유를 빠르게 얻고 싶다면 당장 직업을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겠다. 그 망할 직업을 버려라.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다른 선택을 내려야 한다. 다른 선택을 내리려면 신념체계를 바꿔야 한다.
믿음은 선택에 우선하며, 선택은 행동에 우선한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내 직업을 '그 망할 직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괘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직업은 내게 뻔한 망함을 부드럽게 안겨주고 있는 게 맞았다. 망하는 듯 보이지 않게 내가 딱 요만큼의 삶을 살아낼 만큼의 돈은 계속 주겠지만, 65세 이후는?

그때부턴 연금을 타먹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90년생이 믿고 살기에 이 시나리오는 옛날옛적의 전래동화 같은 느낌이라 마냥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저 책에 나오는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다른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문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회사에 남는다면 나의 10년 후는 예상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가늠하는 게 두려울 만큼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퇴사를 하는 나의 10년 후는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어떤 선택들을 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가늠하는 게 두려울 10년 후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알 수 없는 10년 후를 향해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토익점수·자격증·직장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금융 지식을 갖는 것, 평범한 사람도 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것, 지금까지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실행력을 갖추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들이 바로 당신의 미래를 바꿀 원동력이다.
그러려면 먼저 안정적인 것들을 버려야 한다.
수익은 리스크 테이킹, 즉 위험 감수에 대한 대가다.
짊어진 위험이 클수록 더 큰 수익을 얻고, 위험 부담 없이 안정적인 것만 추구해서는 수익을 얻을 수 없다. 이는 곧 은행 예금과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같은 책에 나오는 또 다른 문장이다.

안정적인 것들을 버리는 일이 나의 경우 정확히 2년이나 걸렸다.

2년 전부터 이 직장에서 성장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직장에 가면 있다는 고인 물이 나라는 걸 하루하루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였다는 게 이런 생각 속에서 2년을 더 고민하게 된 이유였다.

성장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업무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며, 5년이 넘도록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이 없어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가도 되는 한가로운 시기에도, 업무량과 무관하게 월급과 성과급이 착실하게 나오는 그런 회사였다.

보통은 회사 안에 퇴사이유가 차고 넘친다는데, 퇴사를 결정한 지금도 이만한 회사를 구하기는 어렵겠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만큼 마음 편하고 안정된 곳이었다.

그 편안함이 나를 6년간 머물게 만들었다. 퇴사를 말한 오늘조차도 속에서 놓기 아깝다는 마음이 비집고 나올 정도로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아서 놓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대가를 얻으려면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니까.


올해부터 나는 내게 딱 2년의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내 오랜 꿈에 도전할 시간을 말이다.

물론 나를 먹여 살릴 방법 역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직장이 아닌 이제 다른 방법으로 나에게 생활비를 벌어줄 수 있도록 애써봐야겠다.


10년 후에 이 글을 열어볼 날이 기대된다.

우당탕탕한 10년일 테지만, 분명 서른아홉의 나는 스물아홉 지금의 결정에 칭찬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때 안 그만뒀으면 어쩔뻔했어~'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퇴사는 지금이 아니었다면 서른 살, 늦어도 서른한 살에는 했을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 했어도 했을 선택이니 후회하지 말자.

진심으로 나는 내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다시 구직을 하지 않도록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방법을 잘 수립해 나가기를 응원한다.

마흔을 앞둔 내가 이 글을 읽어보며 지난 10년 참 지독히도 열심히 살았다고 눈물 흘릴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살아봐야지.

어떤 말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삶을 한번 가져보자고,

나 스스로에게, 또 이 글을 읽을 모든 퇴사자들에게 응원을 건네며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작가의 이전글 매년 고민되는 새해인사, 할까 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