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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Mar 19. 2023

엉망인 순간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정호승 _ 산산조각

[산산조각]_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이 시는 내가 가장 엉망인 날들에 용기가 되어준다.

내 앞의 엉망진창인 순간들이, 도대체가 어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일들이 그래도 되는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냥 그러면 된다는 이 당연한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평소에는 무책임하게 읽히다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위로와 용기로 다가온다.

'그래 맞어, 그냥 그렇게 살지 뭐!' 해버리게 된다.


받아들이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살다 보면 두 가지 옵션만 있는 듯한, 내가 바꾸거나 멈추는 게 불가능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순간들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는 사실이 참 버겁고 싫다.

그때마다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거라고, 선택권이 있다면 절대 절대 이 세상에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생에 나는 이미 와있고, 그런 순간들도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상황과 사실을 바꾸는 일 앞에선 무력하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 삼으며.

싫어도 견디고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흘려보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의 끝은 결국 삶은 고해가 맞다는 것이 된다.

이 고통의 바다를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떠다닐지만이, 고작 그것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억울하다가도 위로가 된다.


산산조각 까지는 아니지만, 고작 이 나이에도 몇 조각 나있는 듯하다.

다들 조각나있는 채로 성실하게 제 몫을 해내며 살아가는 중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 대단스럽게 느껴진다.

이타적이거나 다정한 사람들은 더더욱.


누군가의 엉망인 순간에 위의 시가, 내게 그랬듯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괜찮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 결심이 강해질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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