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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May 27. 2023

[읽는 넷플릭스]_이터널 선샤인

#8

2005년 | 미국
넷플릭스
*스포일러 포함

한줄요약 : 모든 사랑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포함하고 있다.


재관람을 할 때마다, 영화를 보는 당시 떠올려지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본 것 같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 점이 수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인생영화로 손꼽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는 간단하게만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알고 보는 것보다 모르고 보는 게 백 배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혼란스러운 시간 순서와 너무 자주 바뀌는 여주인공의 머리색에 '이게 뭐람..?' 싶었던 기억이 난다.

여주인공의 "너무 좋아해서 그만두는 거야. 너무 아파."라는 대사가 이해될 때. 

그러니까, 함께인 게 혼자이길 선택하는 것보다 힘들어서 이별한다. 정도의 말은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영화가 인생 영화로 보인다.


주인공 조엘을 조용하고 소심한 아주 평범한 남자이다.

자신과 다른 자유분방함을 가진 클레멘타인에게 이끌리듯 사랑에 빠진다.

너무 다른 둘은 그래서 이끌렸지만 같은 이유로 자주 다퉜고, 헤어졌다.

정확히는 클레멘타인이 일방적으로 조엘과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영화 속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없애주는 '라쿠나'라는 회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하다.

자신과의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엘을 홧김에 본인도 해당 회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이런 판타지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생각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선택권이 있다면, 이 모든 기억을 안고 과거로 가게 되어도 다시 또 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할 것인지를.

현실에서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같은 건 없다. 다만 계절과 시간이 그 역할을 대신할 뿐이다.

사랑스러운 반려견을 떠나보낸 지 무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어떤 반려견도 키우지 못할 만큼 그와의 이별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힘겨웠던 이별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와 함께했던 11년의 시간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낼 거다. 마지막이 그런 이별이더라도 말이다.


내가 하는 사랑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전부 다 안다고 해도, 그 끝이 이별이라고 해도 사랑했던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이 모든 기억을 안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사랑을 하고 똑같은 이별을 반복한다는 것을 알아도 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영화를 보고 재회하는 연인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 그 행복이 꼭 두 번의 이별을 겪지 않는 것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재회하는 연인들의 목표가 다시는 이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랑했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적고 싶은데 위에 줄거리를 모르고 봐야 재밌다고 말한 것 때문에 적을 수가 없다.

'우린 다시 만나도 비슷한 이유로 또 싸우고, 서로를 비난하다가 헤어지겠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합니다'

그래도 적어두고 싶어, 바로 위에 흰 글씨로 적어보았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참 신기하다.

남이었던 누군가와 그토록이나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평생 내편이거나 혹은 내편이었다가 영원이 남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인 걸까?

사랑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당시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오랜 친구보다도 부모님보다도 그 당시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가끔 신기하게 생각된다.


사랑에는 갈등이 그리고 이별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건 결국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어린 왕자의 명대사처럼, 사랑했던 존재일수록 상실의 아픔은 크게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슬프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이 영화처럼, 사랑을 통해 경험하는 행복과 아픔, 갈등과 희망의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나아가게 만들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별했거나,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하고 싶다면 주말 저녁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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