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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Jun 09. 2023

두 번째 읽는 소설

오늘의 책 [불편한 편의점2]

출간되자마자 읽었던 책인데, 많은 기억이 휘발되고 그저 1편보다 좋았었다는 것만이 내 안에 남아있어서 다시 이 책을 읽어보았다.

오늘은 깊은 책을 읽고 싶지 않아, 조금은 가벼운 책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가득인 지금, 책마저 일처럼 느껴질까 봐, 오늘만 이런 선택을 했다는 양해를 구하며 시작해 본다.


코로나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이 소설은, 1편이 무려 70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2편 역시 2022년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읽어보면 참 술술 읽히면서도 백신 접종 차례를 기다리는 것, 코로나 시국이어서 편의점 매출이 괜찮은 것, 마스크를 써 알던 사람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 등 작은 현실들을 반영하고 있어 더 좋았다.

일반적인 삶들이 참 많이 담겨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자영업자만 돈 버나요? 건물주는 돈 안 버나요? 고통 분담할 거면 건물주도 직장인도 거리두기 해야죠.”
주인이 푸념하듯 말했다.
“그렇죠. 건물주도 거리두기 해야죠. 건물 하나에 가게 두 개면 가게 하나는 거리두기라 치고 문 닫게 하고, 월세도 저녁 열 시 이후 분은 안 받고! 공장도 열 시 이후엔 기계 멈추고! 직장인도 이틀에 하루만 일하고!”

직장인이었을 적 이 책에선 이 문장이 읽히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달리 보인다.

나는 세상에 많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아들이 밤늦게 오는 이유는 한남동에서 집까지 걸어와서라고 했다. 열 시에 장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면 열한 시가 넘는데, 차비도 아낄 겸 운동 삼아 밤거리를 걸어왔다고 했다. 이태원과 녹사평을 지나 삼각지를 통과해 남영동으로, 다시 청파동으로 오는 그 밤거리를 걸으며 아들도 많은 생각을 했겠지. 최 사장은 아들의 퇴근길 밤거리가 눈앞에 그려져 다시금 눈두덩이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꼰대답게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문장일 읽고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이 그랬다.

아들의 귀갓길도, 이를 상상한 아빠의 눈두덩이가 후끈 달아오른 모습도 생생했다.





아들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휘청했다. 
다행히 벽을 짚은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 놓인 갈색 캠핑 의자에 앉으니 녹음으로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담겨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여기서 이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던 기억이 났다.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하지만 아들은 정원 끝 감나무가 가을의 결실을 뽐낼 때도, 낙엽이 쌓인 정원에 하얀 눈이 내려앉을 때도 연락이 없었다. 안 풀리는 삶에 지쳐 자포자기한 걸까? 코로나 후유증으로 여전히 몸이 불편한 걸까? 마음 나눌 사람이 곁에 없어 답답한 걸까? 아니면 잔소리 많은 엄마가 옆에 없어서 편한 걸까?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담을 마음의 소리가 있었지만 나는 침묵했다. 그것이 아들을 위해서인지 나 자신을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 둘 모두 고난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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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고라는 사내의 용기에 감화되었다. 그는 내게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해했지만 나 역시 그를 통해 정체된 삶에서 벗어날 기운을 얻었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살아야 한다면 진짜 삶을 살아야 했다. 무의식적으로 내쉬는 호흡이 아니라 힘 있게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었다.
패잔병의 몰골로 아들이 내 스무 평 공간을 찾아온 건 두 해 전이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엄마이기에 따뜻하게 아들을 받아주었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여전히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들을 보면 애잔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동시에 매사 불만 가득한 태도나 실체가 없는 허랑방탕한 일을 꾸미는 꼴에는 넌더리가 났다. 아들에게서 남편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때는 진저리가 쳐졌고, 그걸 용케 발견하는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일었다.
 봄이 되고 코로나가 점차 확산되어가는 동안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빈자리와 아들의 새 자리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고, 묵인하며 지나온 스스로의 응어리진 마음을 돌아봐야 했다. 나는 용기를 냈다. 다행히 언니와 조카가 받아주었다. 그것이 내가 지난 1년 하고도 한 계절을 이곳 양산의 전원주택에 서 머물게 된 이유였다.
이곳에서 나는 숨이 좀 트였고, 지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고, 묵은 생각을 꺼내 햇살에 말릴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옥죄는 문제들을 외면하기보다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전원주택에 끊이지 않는 벌레들을 모조리 살충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살며 얻어 가는 불편하고 곤란한 일들을 받아 안고 사는 법을 체득해갔다.
평안.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 가능했다. 늘 잘해왔다 여기기 위해 덮어둔 것을 돌아보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호수에 유유히 떠 있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분주히 발을 놀리는 것처럼, 평안을 위해 부지런히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처음 책을 읽던 2022년, 나는 이 문장 밑에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담을 마음의 소리에 나 역시 침묵 중이라는 독후감을 적어둔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이 그 자체만으로 나를 생기 있게 만든다.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시간. 묵은 생각을 꺼내 햇살에 말릴 수 있는 시간은 모두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지난 6년이 통째로 그런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넌지시 나를 돕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내 주변에서 나를 아껴주는 사람뿐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지치지 말고 스스로를 잘 다독이며 나아가야 한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처음 가진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엔 대가족이 모여 살았고, 대학 시절엔 함께 상경한 남동생과 양옥집 반지하를 같이 썼고, 결혼한 뒤로는 개인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살던 빌라는 가족 모두의 체취가 묻어 있기에 온전히 혼자라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고.
대학 근처 원룸 건물이라 숙대 학생들이 많이 입주해 있어서일까? 다시 대학생이 되어 서울 유학을 온 기분이었다. 주거 공간을 바꾸니 진짜로 인생 2막이 시작된 듯했다. 나는 오랫동안 꿈꾸던 목표를 위해 공부하고 준비했다. 치매 방지 교육을 받고 성실히 약을 복용했으며 배드민턴 동호회에 나가 체력을 길렀다. 코로나는 여전히 사라질 줄 모른 채 세계를 뒤덮고 있었지만, 살며 배우고 가르친 역사가 증명하듯 이 시기도 곧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내게 있었다.

얼마 전 이사해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혼자 살게 될 할아버지가 걱정이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공간을 엄청 만족하시는 듯 보였다.

그 집의 채광이, 통풍이 얼마나 좋은지를 자랑하셨다. 아마 처음으로 주택이 아닌 아파트 그것도 꽤나 고층으로 이사를 가셔서 처음 경험하는 바람과 채광에 더 신이 나 신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만의 공간은 필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계시면서 만에 하나 일어날 위험 상황 같은 것을 대비해 할아버지의 이사를 끝끝내 반대했다면, 지금처럼 매일 햇빛을 보고, 베란다에서 창밖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일상을 할아버지가 갖지 못하게 되셨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니 또다시 정답을 알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왜인지 할아버지 자신은, 그 공간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으실게 분명해 보였기에 더더욱.

남겨진 이들은 어떤 마지막이 와도 스스로를 탓할 수 있는 모든 가정을 불러와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건 사랑이자 미안함이자 그리움이니.

때문에, 나중일은 그저 나중으로. 우선은 이 책의 주인공도 우리 할아버지도 70이 넘는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가진 것을 그저 축하하기만 하고 싶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책이었다.

두 번째 읽어도 재밌는 책이니만큼, 읽지 않았다면 더더욱 추천하며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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