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Jan 20. 2022

나는 나를 바꿀 수 있을까?

통제하는 삶에 대하여.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올해의 단어는 '통제'로 정했다.

통제보다는 Under control에 더 가까운데,

굳이 해석하자면 ~를 제어하다 / ~를 제어하게 되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는 '반대로 살아보기'를 선택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며 살아보기로 말이다.

예를 들어 잠이 오려고 할 때 잠깐 잠드는 대신 냅다 달리기를 한다던지,

먹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을 때 배달 어플에 들어가는 대신 일어나서 이를 닦는다던지,

일어나자마자 sns와 그날의 웹툰을 읽는 대신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 같은 일.

원래의 나라면 옵션에 조차 넣지 않았을 일들을 선택하며 사는 방식으로 나를 제어해 나가 보기로 했다.


새해가 시작한 지 고작 20일이지만 체감상 200일은 된듯하다.

통제를 결심하니 하루하루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지나간다.

의식적으로 SNS 인터넷 쇼핑, 그리고 의미 없는 기사 읽기를 멈추니 회사를 다니면서도 아주 많은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통제 프로젝트를 시작한 첫날.

기상 직후  해야 할지 도무지   없었다. 매일 눈을 뜨던 침대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우선 평소의 나와는 달리 알람 시간을 연장하지 않고 온수매트를 끄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거기까진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다음은? 이제 뭘 해야 하지?'

평소의 나와 정반대로 행동하기 프로젝트에서 정반대의 일을 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나로만 살아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것들을 보며 시간을 소비 할바에 차라리 가만히 있자는 생각에 처음 몇 분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내가 고장 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다 보니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 이들이 생각났다.

아침운동이야말로 자기 통제의 정석 같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본 건 10시 필라테스를 예약해 두었을 때 9:20분쯤 눈을 떠 취소 시간을 놓쳐버려 할 수 없이 갔을 때가 전부였다.

'그래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해보자!' 몸을 쓰다 보면 다른 생각이 또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하며 운동을 하기로 했다.

매일 하겠다고 다짐하며 구매했지만 지금은 먼지가 쌓여버린 필라테스 기구를 꺼내왔다.

구석구석 닦는데만 20분이 소요됐다.

유튜브에 '필라테스 체어 시퀀스'를 검색해 영상을 보며 전신 운동을 30분가량 했다.

평소에 나였으면 하지 않을 일을 했다는 사실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시작이 좋았다.


다시금 피곤이 몰려왔지만 잠을 선택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우선 눕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당연하게 잠들었을 텐데..' 생각하며 깨달은 건,

그동안의 내 삶은 참 좋은 거였다는 것이다.

일차원적인 행복을 참 착실히도 누려왔구나.


아무튼 올해는 행복을 누려온 그동안의 나와는  다르게 살고 싶으니 계속해서 하려던 일을 하기로 했다.

운동을 끝내니 그다음 생산적인 활동은 영어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있는 위치에 놓인 두꺼운 영어책을 꺼내왔다.

구매 초기에는 존재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어느샌가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마냥 자리하고  그런 책이었다.

책을 펼치니 '쩍'하며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적어도 반년 이상 묵혀있던 책만이 낼 수 있는 그런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괜히 머쓱했다.

책 사이에는 내가 뽑아놓은 프린터도 몇 장 끼워져 있었다. 읽어보니 지난 1년간 음악이 아닌 걸 듣겠다며 종종 틀어놓았던 TED 강의의 원문이었다.

그래 이번 달은 이걸 전부 외우자.

1년 전의 내가 프린터를 뽑으며 하려고 결심했던 일을 2022년의 내가 하고 있었다.

문득 '느리지만 결국 하고 있구나', '하기로 한 일은 결국 하게 되나 보다' 혼자 운명과 필연 뭐 그런 것들에 대해 잠시 소름 돋아했고, 동시에 늦었지만 끝내 외우기를 시작한 스스로를 조금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쭉 들으며 단어를 정리하고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오랜만에 펜을 들고 공부를 하는 일은 역시나 불편했다. 한동안 안 하다 하면 혹시 흥미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재미는커녕 좀이 쑤신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몇 장 읽다 보니 출근 시간이 다가왔다.

출근 전에 이런 것들을 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게 놀라웠다.

나와 반대로 행동하기를 1년만 반복하면 달라지는 것을 넘어 포켓몬의 진화 수준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알람에 맞춰 정시에 일어난 덕분에 회사에서 잠이 쏟아졌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 말은 한 사람은 참 명석하고 철학적인 사람인 것 같다.

원래였다면 고민 없이 커피를 사마셨겠지만 주 3일 소비 통제를 시행 중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맹물이 배부르고 비리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계속 마셨다.

하루 물 2L 마시기도 시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너무 많은걸 한꺼번에 시작했나 싶지만 전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시작일을 따로 정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여하튼 그렇게 식사시간이 되었다.

이 정도 졸림이면 당연하게 휴게실에 가서 1시간 꿀잠을 자고 왔을 텐데, 2022년의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한겨울에 겉옷도 입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애플워치를 구매한 이래 처음으로 나이키  이라는 어플을 켰다.

원래 이걸 위해 애플워치 나이키 버전을 구매했던 건데.. 1년 만에 하려던 일을 했다.

1년 전에 세운 계획을 하나씩 시행해나가는 아주 계획적인 인간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나이키  어플에는 러닝 가이드라는 기능이 있다.

말 그대로 음성으로 러닝을 지도해주는 건데, 쉽게 말하자면 멈추고 싶을 때 목소리로 나를 채찍질해주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 건물 후문에서 뛰기 시작해 '이제 중간지점입니다!' 하는 목소리를 듣고 돌아왔다.

30분이 채 안 되는 2km 코스였는데 잠은 깼다.

유난히 추운 날 겉옷을 입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

멈출  없었던  러닝 가이드의 목소리 덕분이기도 했지만, 속도를 늦추는 순간 만나게 되는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뛰고 오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뛰나 보다 싶을 만큼. 편안한 러닝화를 하나 사서 점심시간마다 뛰어볼까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이면 아주 건강한 인간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일 년 뒤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다음날은 아니었다.

오랜만의 필라테스가 문제였는지 영하뜀박질이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음날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파스를 붙이고 어렵게 출근을 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달이 난다는 옛말은 틀린 게 없다.

나는 안 하던 짓을 하루에 여러 개 했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잠시 달리기와 필라테스는 멈췄지만 대신 하루에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 1시간을 내내 걸으니 6000보가 채워졌다.

의식적으로 한 시간을 걷고 나면 남은 일상에서 이것저것 4000보를 채우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당분간은 걷고, 날이 좀 풀리면 나이키 런을 틀고 또다시 달려볼 계획이다.

필라테스 기구도 먼지가 쌓이기 전에 다시 사용해야지.



그렇게 20일이 지난 지금 7일 중 3일 무지출은 순항 중이다.

하루 물 2L 마시기도 잘 시행하고 있고,

아이스 음료 마시지 않기도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

어떤 날은 도저히 따뜻한 음료를 마시기 싫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얼음을 빼고 물로만 가득 채워달라고 주문했다.

물'만'으로 넣는 게 맞는지, 시원한 물이 아닌 미온수인데 괜찮은지 두 가지나 물으신 걸 보면 흔한 일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며칠 뜨거운 것만 마셔 버릇해서 인지 그렇게 시킨 미온수 아메리카노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뜨거운 게 식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도 좋았고 빨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따뜻한 게 영 아닌 그런 날에는 이런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어팟을 통해 듣는 건 영어'만'이어야 한다는 것도 잘 지켜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듣는 날도 있다.

당연하게 넷플릭스에서도 영어로 된 콘텐츠만 시청한다.

영어자막을 기본으로 놓고 보다가 정말 도무지 모르겠을 때 한글자막을 켜는데 이 방법이 참 좋은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자막이 나올  캡처를 하면 저작권상 화면은 만 상태로 자막'' 캡처되는데 이게 개인적으 굉장한 장점 같다.

장면이 나오면 눈을 이상하게 뜨거나 흔들리는 화면이 캡처되는 경우 간직하기 무서워 다시금 무난한 화면에 맞춰놓고 캡처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을 텐데  기능 덕분에 번거로움을 덜었다.




20일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가지. sns 과식이다.


sns 완벽하게 끊는 일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패했다. 로그아웃을 했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의 계정에 다시 로그인을 하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쉬운 일을 참아내지 못했다.

나의 통근시간은 편도 8분인데,  시간에 지인들의 근황을 확인하는 스스로에게 허락해주기로 했다.

대신 스크린 타임 기준 인스타그램이 하루 20분을 넘기지 않게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며칠 전엔 보던걸 끊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서도 그걸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깜짝 놀랐다.

플랫폼에 서서 인스타를 보다니... 빨리 집에 안 가고 뭐 하는 건지... 집에 가면 못하니(?) 퇴근도 마다하고 그러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새삼 sns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것에 홀려 8분을 넘기기 십상이다.

알고리즘은 나한테 재밌는 것만 보여주고 이 똑똑한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나의 시간을 앗아갈 수 있는지 너무 잘 아는듯하니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마주해야겠다.


두 번째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식이다.

위의 80%만 채워 배부른 더부룩함으로부터 해방되는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던 일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건 좀 억울한 부분이 있다.

조금씩 먹어 버릇하니 위는 점점 줄어갔고 그래서 위의 80%가 점점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약속대로 1월 1일 기준의 80%를 먹고 있는데, 1월 20일인 지금 그만큼의 양이 내게 더부룩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걸 과식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더부룩하면 과식인 건가.

 억울해하기에는 진짜 많이 먹었던 날도 꽤나 있었으니, 여하튼  지켜내고 있는  분명하다.

이 부분은 먹는 음식의 부피를 정해놓고 먹거나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걸로 조정해 나가기로 했다.


새해의 결심은, 기존의 나와 반대의 선택을 하는 일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았다.

일차원적인, 아주 쉽게 얻었던 편안함과 재미들이 한 해의 끝에서 내게 현타를 남겨준 걸 생각하면 나는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엄청나고 대단하고 급진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로 올 해를 채우고 싶다.

이 끝에는 정말 대단한 게 있을 수밖에 없다.

쉽게 얻은 건 쉽게 없어진다는데 이건 아주 어렵게 얻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관성에 거스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기존의 나는 너무도 익숙하고 편하다. 그래서 머무르고 싶어 진다.

나를 이기는 사람은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 중이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를 거스르며 계속 반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1년 후의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이 질문의 답이 누구보다 궁금하다.


20일마다 이곳에 나의 통제 기록을 남겨두려 한다.

이건 나의 통제 일기이자, 관성을 거스르기 위해 내가 숨겨놓는 치트키이다.

무너져  ,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을 , 기존의 내가 나를 끌어당겨 원위치에 우려 할 때마다 와서 읽어볼 예정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심 초기의 내가, 대체로 1월의 내가,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으니 말이다.

오늘의 글이 2월의 나도, 여름의 나도, 가을/겨울의 나도 잘 붙잡아주길.

그렇게 올해의 끝에선 위 질문의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에 다들 결심 하나씩은 갖고 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