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어린시절 10남매였던 아빠 형제들은 참 우애가 돈독하셨던 듯 싶다. 할머니가 살아셨을때 1년에 한 번씩 가족끼리 모두 함께 여행을 가는 이벤트가 있었다. 1년인지 2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중요한 사실을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지역에 살고 계셨고 순천에 사는 가족들이 한 6집, 강원도에 1집, 서울에 3집 정도 터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순천 근처에 가까운 계곡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러다 강원도에 사시는 고모집 근처에도 여행을 갔었고, 서울에 거주하는 분들 덕에 서울 근처에도 갔었다가 모두 다 같이 자연농원이라는 지금의 에버랜드에 갔던 적이 있다.
아빠 형제들이 자주 모일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계시기도 했지만 아이들 또래가 정말 많이 비슷했다. 오빠, 언니, 동생들 나이차이가 거의 1-2살 차이로 계속 있고, 서로 다른 집인데 동갑내기가 4명인 또래도 있었고 그래서 다 같이 어울려 놀기 딱 좋았었다. 자연농원에도 어린 아이가 있는 집들은 거의 다 갔었고, 고모들이 열심히 줄을 서면 우르르 몰려가 놀이기구를 타곤 했었다. 생에 처음갔던 자연농원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느라 하루 종일 아빠를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저녁시간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아빠와 함께 다니며 놀이기구를 탔던 게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꽤 스릴있는 놀이기구를 좋아했어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그걸 타려고 했던 친척들이 아무도 없었던 거다. 하루종일 고모가 줄 선 놀이기구만 타다가 아빠를 만나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가 있다고 내가 이야기 했었나 보다. 아빠 손을 잡고 내가 타고 싶었던 놀이기구 쪽으로 갔다. 이름이 마법의 양탄자였던가? 진짜 30년도 넘은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다. 아빠는 나랑 놀이기구를 같이 타 주진 않았던 것 같고, 내가 타는 모습을 바깥에서 지켜봐준 것으로 기억한다.
참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던 아빠,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하지 말아라 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줬던 아빠. 마법의 양탄자가 뺑뺑 돌고 높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데도 아빠가 보고 있으니 별로 무섭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스릴을 즐기며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또 아빠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다. 늘 지켜봐주시고 잘 들어주었던 아빠 덕에 나는 진짜 당차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으로 자랐다. 나의 거침없음을 귀엽게 봐주시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었던 아빠. 내가 부르면 늘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주던 아빠.
참 크고 든든했던 아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었던 아빠. 아빠와의 놀이동산의 기억은 참 오랜시간 동안 추억을 남았다. 그때 그렇게 갔던 자연농원이 에버랜드가 되는 시간 사이 아빠는 뇌출혈로 장애인이 되었다. 한 창 팬더 한 쌍이 한국에 와서 사람들이 구경을 많이 가던 시기 였다. 그날 그냥 아빠에게 팬더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팬더 보러 가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참 가팔랐다. 나는 아빠와 함께 팬더를 보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힘든 척을 하지 않고 아빠의 휠체어를 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같이 볼 수 있었고, 다 보고 나서 올라 가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마법의 양탄자를 탈 수 있게 든든한 미소를 띄며 바라봐주었던 아빠는, 이제 휠체어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끌어주지 않으면 작은 내리막, 오르막 하나 자유롭게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세월이 참 야속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끌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스쳐지나간 날이었다.
자연농원에서 에버랜드가 되는 사이, 그 사이에 있었던 무수히도 많은 아빠와의 추억과 함께 나눈 이야기 덕에 나는 아빠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늘 지원해주고 격려해주던 아빠의 존재가 이제는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 시간이 지속되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
인생은 내가 좋아했던 스릴있는 놀이기구 처럼 롤로코스터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잠깐 즐기면 그만이었던 놀이기구와 달리 순간 순간의 뜨거운 맛, 슬픈 맛, 답답한 맛들이 온통 섞여서 정신을 놔 버리게 하기도 한다. 아빠에 대한 수 많은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을 에버랜드 놀이기구 하나 타면서 모두 날려버리고 싶은 밤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때를 추억하며,
그때와 지금 모두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