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7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집은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가게 안에 딸린 방에서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이 이렇게 넷이 살았다. 1980년대만 해도 그렇게 가게 딸린 방에서 사는 집들이 많았다. 우리 집 앞에는 차가 한 1-2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차도 겸 인도가 있었고 건너편에는 옷가게, 일식집, 공업사가 나란히 위치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골목에서 해가 질때까지 뛰어 놀았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 친구들과 계속 뛰어 다녔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뛰어 다녔다. 숨바꼭질, 이어달리기, 얼음땡 등등을 하면서 놀았다. 동네의 모든 곳은 놀이터 였고 이 가게 저 가게가 다 같이 뛰놀던 친구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늘 그렇듯 걸을 줄 모르고 뛰어만 다닌다. 나도 그랬었다.
우리집 바로 앞에는 옷가게가 있었는데 이름이 하이패션이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옷가게 이모는 우리 엄마랑 참 친했다. 시간이 있을 땐 가게에서 차 한잔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우리를 불러 맛있는 것도 챙겨주시고 그런 사이였다.
하루는 엄마 심부름으로인지 건너편 이모네 가게에서 뭘 가져다 드리고 이모랑 이야기를 했었던 듯 하다. 그 가게에서 보면 우리 가게가 바로 보였다. 엄마가 뭘 하는지 아빠가 뭘 하는지 다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심부름을 마치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난 그냥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앞에는 우리 가게를 보며 뛰어갔다.
퍽
내가 그 골목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택시에 부딪힌 것이다. 앞만 보고 뛰어가던 나는 택시가 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택시 기사님도 내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을거다. 어린 아이들이란 너무나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니까. 다행히 그렇게 세게 부딪혔던 것 같지는 않다. 그날 병원에 가지는 않았고, 온 몸에 파스 같은 것을 붙이고 집에 있는 흔들 의자 같은데서 누워있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가게 딸린 방에 누워있는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앞에는 가게, 뒤에 딸린 작은 방이다보니 바깥 소리는 거의 다 들렸다. 택시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 있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아주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골목에서 왜 그렇게 빨리 운전을 했냐고 택시 아저씨에게 혼내듯이 이야기 하셨다. 나는 방안에 파스를 붙인채 누워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잘못한 건데...'
하는 생각을 했다. 7살 정도 밖에 안된 어린 여자 아이와 부딪히 택시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아빠의 화를 받아내고 있었다. 내 어릴적 기억에 아빠가 화를 내던 첫번째 장면이고,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이다.
그때는 아빠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욱씬거리는 내 몸과 택시 아저씨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과 앞으로는 골목에서 앞에만 보고 뛰지 말고, 차가 오나 안 오나 꼭 확인해야겠다는 그 정도의 생각만 했던 듯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다칠뻔한 순간을 경험해보니, 그때의 아빠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마음이 아프고, 내가 잠깐 놓친 사이에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하면 나의 잘못인거 같기도 하고, 더 크게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상상만으로도 손 떨리고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더 주의깊에 아이를 챙기자고 내 자신을 더 다그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빠의 화는 그냥 단순히 택시 기사님을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은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가 더 크게 다쳤으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그 상황에서 더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7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다그칠 수 없으니 그 모든 감정이 택시 기사님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평상시 늘 방긋 웃어주고, 잘 놀아주던 아빠가 그렇게 화 내는 모습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순간이 교통사고의 기억과 맞물려 오랫동안 생각이 났다. 누군가를 위해서 난 그렇게 화가 났던 적이 있었는가? 나의 화는 늘 나를 위한 나의 불편감으로 인해 생긴 화였는데... 아빠의 화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소중한 것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불안함, 두려움, 걱정이 온통 뒤섞였던 그런 감정이었던 거다.
소중한 것을 잃을까 걱정되는 두려움, 그건 부모가 되어 보지 않으면 경험해 보기 어려운 감정 중 하나이다. 아빠의 걱정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었고, 생각해보면 아빠는 내가 늘 걱정되었던 순간에 화를 내셨던 것 같다. 뭔가 반복되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화로 표현했던 아빠의 그 서투르지만 깊은 사랑이 이제야 보인다.
아빠는 웃고 있는 순간에도, 화를 내고 있었던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데는,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는 데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구나. 이제라도 알게되서 다행이다. 화 또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그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