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에 예민한 편이다. 유독 단어에 민감하다.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특히 명칭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한다. 뭉뚱그려 명명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단순히 내가 까다롭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서운한 것이다. 애정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 한 말을 흘려들을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요즘 기업에서는 임직원 직급을 간소화하고 직원 간 호칭을 님, 프로 등으로 통일했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호칭부터 바꾸겠다는 것이다. 호칭은 대화 참여자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절대적 영향을 받는 만큼 전략적 용도로 제기된 생각일 터.
이처럼 누군가를 명명하고 호명한다는 것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때로는 관심, 때로는 존중과 권위를 인정한다는 확인, 또 때로는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키. 개인적인 나는 경은 혹은 여보라고 불린다. 사회적인 나는 신 앵커라고 불린다. 내가 좋아하는 명칭이자 호칭이다. 신 앵커의 정책 말모이라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앵커라는 호칭은 익숙하면서도 쑥스럽기도 하고 언제 들어도 벅차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사회적인 엄마라고 부르는 팀장님이 있다.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였던 사회 초년생을 사람으로 만들어준 분이다. 호되게 혼나면서 일을 배웠고, 그보다 더 귀한 태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몇 장면이 있는데, 팀장님의 앵커론이 그 중 하나다.
“앵커는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하거나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그 권한이 주어질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사를 이해하고 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식견과 경험, 문장력, 균형감 등”
기자가 쓴 기사는 데스크가 승인한다. 하지만 최종 수정을 거쳐 전달하는 사람은 앵커다. 조사나 단어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늘 고심한다. 불필요한 선입견을 줄 법한 단어는 삭제한다. 너무 어려운 단어는 같은 층위 안에서 쉬운 것으로 바꾼다. 긴 문장을 다듬고 직전 기사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연결멘트를 적는 것도 앵커의 몫이다. 정확한 표현을 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이나 부처 출입 기자에게 수시로 묻는다. 때로는 데스크와 상의하기도 한다.
특히 속보나 특보를 진행할 때는 앵커의 역량이 한눈에 보인다. 정보와 지식, 순발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 면면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보는 평시와 다르게 특별히 잡힌 특별 편성이다. 예를 들어 지진이 발생했다거나 태풍이 북상하면 관련 소식을 중점적으로 편성해 보도하는 식이다.
나는 국정 뉴스를 진행하다 보니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이 오면 늘 긴장 상태였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매일 청와대 취재기자가 올려주는 수많은 자료를 눈여겨보며 특보를 준비하곤 했다. 엠바고가 걸린 사안은 가려내야 하고, 수많은 변수가 공존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속보는 뉴스 프로그램 진행 중에 수시로 발생하는 특별 소식이다. 화면 하단에 표출되는 자막 한 줄이나 부조에서 들려오는 피디의 단출한 설명 등으로 긴급하게 소식을 처리한다. 데스크에 앉은 앵커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에서 침착하게 속보를 전달해야 한다.
서서 진행하는 앵커 리포트 중간에 속보가 들어와 아주 짧은 자료 화면이 나가는 동안 서둘러 자리에 앉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타이틀 화면이 끝나기 전에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 내 모습이 비춰질까봐 마음이 분주했다. 그 와중에 호흡이 뜨지 않도록 집중해야 했다. 주어진 정보는 달랑 한 줄. 공유받은 화면이 들어와 그나마 수월하게 속보를 마쳤다.
속보 처리는 보도의 꽃이다. 이 순간만큼 앵커가 자신의 역량을 잘 보여줄 기회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실시간 송출되는 방송이니까. 올 게 왔구나! 하면서도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는 아직 팀장님의 앵커론에 부합하지 못하는 앵커다. 그래서 신 앵커라는 호칭이 쑥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늘 앵커다운 앵커, 호칭에 부합하는 괜찮은 직업인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