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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미안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네이버 블로그 '전문상담사 잇슈' : 이해하기

by 잇슈


매년 누군가로부터 사과, 즉 '미안했어'라는 과거형 인사를 듣는다.

그들은 한때 나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또는 조금 먼발치의 혈연이기도 하다.


휴대폰 번호는 바뀌었지만

과거에 잠깐 했던 SNS나,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는 그대로이다.

그래서인지 그 연락 창구로 매년 누군가로부터 사과의 연락이 온다.


오래된 기억은 결국 희미해진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기도 한다.

대체로는 좀 더 죄책감의 무게가 기울어진 사람에게 그 몫이 돌아가는 것 같다.


이미 상대가 떠나버린 시소의 반대편,

한없이 추락한 자리에 앉아

맞은편 존재가 있었던 자리에 얼핏 보이는

구름 한 점 없는 공허한 하늘의

그 빈 공간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짧게는 일 년, 또 길게는 10년 전까지.

나는 이미 지나온 그 길목에서

그들은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말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 자리에서 쉬이 떠나지 못하는 그 마음은

그들의 고통이 또 한없이 가엽게 느껴져서

딱히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내게 있어 그들의 가치가 거기에서 끝났다는 실증이다.

이다지도 깔끔한 관계의 정의.


사람이건 일이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인연도 악연도 집착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 그게 나였다.


모두 나와 다른 관계였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내게 다시 연락을 해온 목적은 모두 같았다.


'다시 너를 만나고 싶어.'

'다시 그때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


사과와 용서, 그 과정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20대 때는 그런 그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알았노라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어떤 일들은 우리가 애써 부단히 애쓰지 않아도

몸이, 가슴이, 그리고 영혼이 스스로 체득하는 것들이 있는 듯했다.

그게 그러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그들이 그 먼발치에서 또다시 내 이름을 부른 이유가

자신들의 죄책감을 덜어달라는 도움의 요청이라는 사실을.

관계의 회복은 그들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시간이 알려준 다는 이치를.


그렇게 나는 이전과는 다른 답변을 돌려주게 되었다.


―그동안 나보다 네가 더 힘들었겠다. 나는 괜찮아.

그렇게까지 떠올린 적도 없었고, 그때의 일로 힘든 적도 없었으니까.

이젠 나도 알았어. 잘 지내. 이만 줄일게. 안녕.


'안녕'이란 인사가 있다는 걸 알아도

어느 날부터 사용하지 않는 날들이 더 늘어갔지만

어느덧 끝맺음의 매듭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건 꽤 담백하고, 또 유용했다.


그러니 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사진 출처: iStock 무료 이미지


https://blog.naver.com/ishout292/22379326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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