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Jul 22. 2023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일상에서 사라진 공화국

최근 초등학교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한 교사는 학생에게 폭행당했지만 저항하지 못했고, 부임한지 얼마 안 된 교사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이런 사건은 우리나라가 '공화국'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두에게 익숙한 말이지만, 일상에서 체감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공식적으로 왕이 없다는 이유로 나라 이름에 공화국을 넣은 곳이 하나 가득 보인다. 그 중에서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원래 담고 있던 이념에 부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공화국은 단순히 왕 없는 나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왕이 있는 나라도 공화국일 수 있다. 영국처럼 국왕에게 실권이 거의 없고 여러 사람이 정치 권력을 분점하며 공공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름은 왕국이어도 내용물은 공화국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역사학자는 황제가 군림하던 동로마 제국을 특별한 모습의 공화국(공화제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동로마 황제는 엄연히 법적으로 동등한 시민 중 한 사람이었고, 공공이익에 봉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화국은 이념을 담은 이름이다. 어떤 나라가 엄밀한 의미로 공화국이 되려면, 누구도 자기 이익만 생각하며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너무 많은 권력을 가져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균형을 이뤄야 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공화국이란 폭군처럼 행사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다. 누구도 강자의 변덕에 지배받지 않고 함께 공동체의 이익을 쌓아가는 나라,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나라가 공화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이름만 공화국이다. 정치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폭군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터진다. 권력 남용 탓에 대통령이 탄핵당하기도 했다. 일상에서도 공화국 정신을 찾기 힘들다. 소비자는 물건 하나 샀다는 이유로 상담원에게 폭언하고, 관리자는 상급자라는 이유로 부하 직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집안에서도,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권력의 격차 탓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공격받는 사건이 벌어진다. 공화국이 폭군 없는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다.

최근 교육계에서 벌어진 비극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은 모든 것을 혼자 소유하는 왕처럼 굴었고, 교사는 자격 없는 왕에게 시달렸다. 사람이 사람을 법적 근거나 공익적 이유 없이 지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지만, 우리나라 교육계는 공화국 밖에 있다.

이제 '갑질'은 해외에서도 유명해졌다. 그만큼 너무 많은 사람이 견제받지 않고 정의롭지 않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탓에 아픔을 겪는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나라다. 다른 사회문제도 시급하지만, 우리 일상을 좀 더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공화국의 부재'에도 신경써야 한다. 처음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우리나라는 공화국의 길을 걷기로 약속했다. 일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폭군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더 이상 그 약속을 미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일상에서 살아 숨쉬는 공화국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내셔널리즘은 죽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