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문해력이 아니다. 어른들이 키오스크 안내문과 스마트폰 설명서를 빠르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른들의 문해력을 의심하지는 않는 것처럼, 요즘 애들이 한자어나 옛말을 모른다고 해서 곧바로 문해력을 지적할 수는 없다.
사람은 단어를 타고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어른들과 자주 어울리거나 스스로 어려운 책을 읽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면, 청소년이 '사흘'의 의미를 몰라도 이상하지 않다. AI도 배운 적 없는 단어는 쓸 수 없다. 청소년이 단어를 모른다면 교육 환경을 탓해야지 이해능력부터 탓해서는 안 된다.
물론 많은 청소년이 긴 글을 읽지 못하거나 문맥을 잘못 짚는다. 그런데 이게 요즘 청소년만의 문제일까? 앞 세대는 모든 글을 왜곡과 오해 없이 빠르게 이해할까? 신문부터 논문까지 자유자재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세대에나 흔하지 않다.
문해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독서량은 전반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청년층보다 중장년층의 독서량이 더 많이 줄었다. 독서량도 요즘 애들이 특별히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볼 결정적인 근거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처럼 문해력이 높다면 하지 않을 일을 벌이는 사람은 주로 중년, 장년, 노년층이다.
요즘 애들의 문해력은 특별히 걱정해야 할 수준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기 때문에, 교육 체계만 갖춰진다면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은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애들이 '사흘' 같은 단어도 모르는 건 분명하다. 읽는 능력은 문제 없는데, 기본적인 단어가 통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장 유력한 원인은 세대 분열이다.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탓에, 앞 세대가 당연하게 쓰는 말들이 뒤 세대로 전승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요즘 애들이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것처럼 여러 어른들과 부대끼며 살았다면, 사흘의 의미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연히 익혔을 테니 말이다.
요즘 청소년은 부모, 학교, 인터넷에서만 단어를 배운다. 부모가 수능에만 관심 있고, 학교가 주입식으로 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인터넷이 알고리즘을 통해 제한된 정보만 보여준다면, 요즘 애들은 '사흘'도 배울 수 없다. 앞 세대와 요즘 세대는 정보를 접하는 환경이 너무 달라졌다. 자연히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요즘 애들은 '사흘'을 모르는 대신, 앞 세대는 'kg받는다'를 모른다. 그만큼 언어가 분열되었다.
그 다음으로 유력한 원인은 계급 분열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은 주변 환경을 통해 단어를 배운다. 그렇다면, 고학력 - 고소득층과 저학력 - 저소득층은 단어 양에서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계급마다 서로 사는 환경과 누리는 기회가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부유한 부모는 자녀에게 더 많은 정보를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다. 10년 차 직장선배에게 배울 수 있는 것과 한 달 직장선배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다른 것처럼, 경제력으로 더 넓은 세계를 접한 부모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느라 좁은 세계만 접한 부모에게 배울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소득과 어느정도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소득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휴거 논란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나라 고소득층은 다른 계급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계급에 따라서 청소년이 접하는 정보가 다르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애들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래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알기를 바라는 건 나쁜 문화다. '사흘' 논란은 사실 문해력 하락이 아니라 사회 분열을 보여주는 증거다. 세대마다, 계급마다 사는 환경이 너무 달라진 바람에, '사흘'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언어가 달라져 버린 것이다. 따라서, 문해력을 조준한다면 문제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