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적립형 공공주택
이재명 정부가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을 확대한다.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식인데, 핵심은 이렇다. 우선 구매자는 주택 분양가의 10%에서 25%만 스스로 마련한다. 나머지 부분은 공기업 등이 지분을 소유한다. 이후 구매자는 20년, 30년에 걸쳐서 공공지분을 구매할 수 있다. 공공지분이 남지 않으면, 그 집은 온전히 구매자의 소유가 된다.
공공지분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그만큼 임대료를 내야 한다. 중간에 집을 판매할 경우, 남은 지분에 따라서 소유자와 공기업이 수익을 나눈다. 예를 들어 집을 팔아서 양도소득 2억 원이 생겼는데 남은 공공 지분이 50%라면, 소유자는 1억 원을 가져간다.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고 주거 구매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춘다. 분양가가 6억 원이라면, 구매자는 그 25%인 1억 5,000만 원을 대출로 마련하면 되고, 분양가가 3억이라면, 7,500만 원만 준비하면 된다.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이 확산되면, 구매자는 20, 30년 전 가격으로 집을 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정부가 크게 손해보지 않는 제도다. 민간주택을 국유화해서 싸게 공급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공공이 지은 집을 할부로 판매할 뿐이니까. 공공분양은 보수 정부에서도 잘 활용한 제도다.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단지 분양가를 분할 납부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추가했을 뿐이다. 개인이 집을 온전히 소유하려면, 결국 정부에 남은 집값을 지불해야 한다.
공기업과 지분을 공유한다는 점 때문에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한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영국의 가혹한 반사회주의자, 마거릿 대처 총리다. 1980년 대처 총리는 'Housing Act 1980'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핵심은 지방정부가 공급하던 공공임대주택을 민영화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에서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주택의 상당부분을 공급해 왔다. 1946년에는 지방정부가 새로 지어진 주택의 45%를 공급했고, 1949년에는 무려 84%를 공급했다. 이는 당시 노동당의 애틀리 내각이 영국을 재건하며 추진한 주택 정책인데, 아무래도 '지방정부 사회주의'라고도 불리는 페이비언주의가 정책에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1951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공공주택의 비중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1950년대 보수당은 일국민 보수주의를 따라 복지국가를 지지했지만, 노동당의 사회주의 정책에는 반대했다. 그 일환으로 민간 주택 공급자의 비중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1979년, 일국민 보수주의도 사회주의, 집산주의의 일종이라며 비판하고 나선 마거릿 대처가 정권을 잡는다. 대처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온갖 것을 민영화할 계획을 실행한다. 대처가 이상으로 꿈꾸던 '대중 자본주의', 즉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산을 소유해서 자본주의의 일부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980년에 통과시킨 주택법(Housing Act 1980)도 그 일부였다. 주택법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는 집을 구매할 권리(Right to buy)를 갖게 된다. 대처 내각은 거주자가 공공임대주택을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했다. 거주기간에 따라 할인률을 높였고,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혜택을 확대했다.
이 때 지분 공유(Shared Ownership) 제도도 도입했다. 이 제도 덕에,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는 집의 일부를 자기 자본과 주택담보대출로 구매하고,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지불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지분을 추가로 구매하면 그 집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 정책은 공공주택을 넘어 일정 조건을 갖춘 민간주택에도 확대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지분적립형 주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처 내각의 지분 공유 제도는 분양가가 아니라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 정도다. 구매자와 소유자가 주택의 지분을 공유해서 구매자의 부담을 낮춘다는 점은 같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이념이 대처의 대중 자본주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재명 정부의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당장 집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도움될지 모른다. 하지만 장점은 딱 거기까지다.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집값이나 임대료를 낮춰주지도 않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지도 않는다. 그저 새로운 분양 방식을 통해 공공주택을 민영화해서 집값 상승에 목숨거는 분위기를 지탱할 뿐이다. 집값을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주담대 비중을 억제하는 효과도 옅어질 것이다.
실제로 지분 공유 제도는 영국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정책이 아니다. 잡값과 임대료가 계속 상승하면서 제도의 취지가 희석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집으로 돈 버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집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집값을 억제하면 집주인은 집으로 돈을 벌기 어려워진다. 주택을 투자 수단으로 두는 사회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애초에 지대 추구 분위기 속에서 상승한 주택 가격은 거품이다. 과연 거품이 언제까지 부풀어 오를 수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에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임대주택을 정비하는 것이다. 집을 투자 수단으로 볼 수 없게 하는 대신, 임대주택에서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반드시 자가주택을 보유해야만 한다는 편견은 지대 추구에 의한 가격 거품과 공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이미 지켜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을 비판해야 하는 것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진보주의자다.
물론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을 도입한 후 부동산 불로소득을 공략하는 정책도 도입할 수도 있지만, 자가 소유의 꿈을 자극하고 나서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미 전 정부가 조세 분야에 대처리즘을 도입해서 재정을 망쳤다. 우리나라에 또 다른 대처리즘은 필요하지 않다.
참고자료
이영환, 영국 사회주택정책의 변화 연구 - 보수당 집권기간(1979-1997)을 중심으로 -, 한국사회복지학 Korean Journal of Social Welfare, Vol. 35, 1998.
오도영, 영국의 사회주택 정책 변화와 시사점, 국토연구원, 국토 2014년 7월호 (통권393호)
허용창, 영국 보수당의 공공주택정책 사례 연구: 대처정권과 카메론정권의 비교, 사회복지연구 Korean Journal of Social Welfare Studies, vol. 47(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