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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06. 2023

새 진보 유감

새로울 것이 없는 진보 그룹

'새로운 진보'라길래 알면서도 조금 기대했습니다. 역시나 홈페이지 초입부터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우리는 진보집권의 실현을 앞당기고자 합니다."

첫 페이지에 굉장히 싫어하는 문장이 나타났습니다. 문장의 내용이 아니라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가 문제입니다. 이 문장에는 술어로 쓸 수 있는 단어가 세 개나 등장합니다. '집권하다', '실현하다', '앞당기다', 이 세 개 중 두 개가 특별한 이유 없이 명사화되어서 나열되어 있습니다.

저는 문장 스타일로 글쓴이의 성격을 대강 추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급한 성격이 글씨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처럼, 허세나 분노, 차별 어린 시선도 문장 스타일로 드러납니다. 물론 문장 스타일은 꾸밀 수 있는 요소인 만큼, 좋은 문장 스타일만 보고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쁜 문장 스타일은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보집권의 실현을 앞당기고자 합니다."

이 문장은 분명 절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보집권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진보집권을 앞당기고자 합니다." 굳이 술어가 될 수 있는 단어를 3개나 동시에 나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 없이 단어를 나열했다는 것은 곧 말하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말하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말할 시간도 부족한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독단을 의심하는 데에 시간을 쓸 리가 없습니다.

고작 한 문장 갖고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고작 한 문장이 아닙니다. "약화된 계층이동성은 노동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복지국가의 토대를 흔들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이 세금 감소와 부자 감세를 해주는 세력,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력, 일하는 시민들의 요구보다 기업의 요구를 우선하는 세력에게 넘어갈수록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 심각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홈페이지 곳곳에 말하고 싶은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요즘 진보처럼 딴지를 걸어 보자면, 단어 하나는 곧 데이터입니다. 더 많은 데이터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불필요한 단어를 나열하는 사람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줄일 수 있는 단어를 줄이지 않은 새로운 진보 홈페이지는 친환경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문장을 평가하기에는 저도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정치 조직이 어떤 문장을 골라야 하는가에 대한 소신은 있습니다. 바로 '민주적 소통'에 부합하는 문장입니다.

민주적 소통에 부합하는 문장이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설명이나 맥락 없이 나타나는 전문용어, 주술 관계도 찾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구조는 읽는 사람에게 이해할 책임을 일방적으로 떠넘깁니다. '이해'는 서로 협력해야 하는 일이지만, 복잡한 문장은 상대방에게 노력을 강요합니다. 자연히, 문장은 지저분할수록 많은 사람을 배제합니다. 소통 단계에서 민주적이지 않은 사람이 상품을 생산하거나 자원 배분을 논의할 때 민주적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부러 썼든 무심코 썼든, 난해한 글들은 기본적으로 차단과 배제를 추구한다. 민주적 소통의 가치를 부정하는 글이다."
- 조셉 윌리엄스, '스타일 레슨'

정치도 서비스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를 때에도 신중합니다. 그런데, 유권자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정치 조직은 기업만큼 고민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질서입니다. 선택받기 위해 말을 고르지 않는 정치 조직이 민주주의에 적응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첫 인상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 새로운 진보가 추구하는 미래도 찾아 봤습니다.  "이러한 부는 당연히 모든 시민이 함께 소유해야 하며, 그럴 때만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딱 두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퇴행적 평준화.' 새로운 진보는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고, 기본소득과 기본주택을 나눠주자고 제안합니다. 언제나처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평등해지기 위해 나누자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새로운 진보의 평준화 계획이 정말 실현 가능한지는 둘째 치더라도, 실현되었을 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진보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회주의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사회를 목적 - 합리적으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새로운 진보가 바라보는 미래상은 목적 -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는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행복한 분배'를 바랍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공허한 젠더 전쟁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은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새로움으로 다른 낡음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진보는 소통 방식을 다듬지 않았습니다. 평등한 분배를 제안했을 뿐, 훌륭한 생산을 제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남의 의견을 들을 것 같지 않고, 퇴행적인 평준화를 바란다는 점에서, 새로운 진보는 어딜가나 흔히 볼 수 있는  K - 진보 그룹입니다. 새롭지 않은 진보에 기대할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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