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May 24. 2023

민주당의 수박, 나치당의 스테이크

결속의 역설

민주당이 남국의 늪에서 허우적 댄다. 코인 게이트의 여파가 심상치 않자, 김남국 의원을 내치려는 비명계와 그도 품으려는 친명계가 다툰다. 싸우는 양상이 꽤 과격하다. 1920년대 독일처럼 사회질서가 무너졌더라면, 지금쯤 한 두 사람이 피를 흘렸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독일, 나치당에서도 여러 계파가 다퉜다. 친이재명계 민주당원이 다른 민주당원을 수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독일에서는 친히틀러계 나치당원이 다른 나치당원을 '스테이크'라고 불렀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1934년에 히틀러가 결심을 굳히기 전까지, 스테이크는 나치당의 계파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는 말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당시 나치당원은 선거운동기간이 아니어도 갈색 제복을 맞춰 입었다. 군대 같은 결속력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초기 나치당의 결속력은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결속된 독일의 힘으로 유대인 세력의 침공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은 공유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치당원은 집권 전략과 미래 비전을 두고 히틀러의 당권파와 다른 지역의 비당권파로 나뉘었다.

바이에른에서 맥주홀 폭동이 실패한 뒤부터, 당권파는 무력 혁명을 포기했다. 대신, 제국의회에서 의석을 늘리고 기득권층과 손을 잡으려 했다.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을 받아들인 독일을 하나의 지도자 밑에 결속된 독일로 만들려고 했다. 당시 독일인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을 독일에 어울리지 않는 서구의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가 아니라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그 지도자임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한때 당권파를 궁지에 몰았던 비당권파는 체제를 근간부터 흔들려고 했다. 독일 북부 지역이 주 거점이었던 비당권파는 독일의 기득권층과 자본가 계급을 혐오했는데, 그들이 무능하고 부패해서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옛 프로이센 귀족의 지휘를 받지 않는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서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폐지할 계획까지 구상했다. 이들은 서구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 소련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변했는데, 당시 소련식 공산주의, 다른 말로 스탈린주의를 소련의 나치즘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레어로 구워진 스테이크처럼, 비당권파는 겉으로 갈색 제복을 입고 안으로 붉은 사상을 품고 있었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치당에서는 두 계파가 경쟁하고 있었다. 당권파는 민주주의와 기득권을 이용하려 했지만, 비당권파는 돌격대를 길거리에 풀어서 패싸움을 벌이고 전통 귀족층을 대놓고 위협했다. 당권파는 '하일 히틀러'를 외치면서도 히틀러의 집권 전략을 방해하는 비당권파를 스테이크라고 부르며 배척했다. 과격한 나치당답게, 두 계파는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어떤 비당권파 인사는 동료와 함께 주요 당직자를 주먹질하고 제명당하기도 했다(슈테네스 반란).

당권파는 가혹하게 보복했다. 여러 갈등 탓에 나치당의 성장이 정체되자, 히틀러는 결단을 내렸다. 1934년 6월 30일, 히틀러는 충성스런 당권파와 친위대를 동원해서 스테이크를 길거리에서 대놓고 사살했다.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전 총리를 포함해서 평소에 히틀러를 방해해 온 인물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 날을 '장검의 밤'이라고 부른다. 결속에 미쳐 있던 나치당은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결속력을 키웠다.

장검의 밤 이후부터 나치당은 더 망가지기 시작했다. 모든 나치당원이 히틀러를 향한 충성 경쟁을 벌였다. 흔히 독일이라고 하면 효율성을 떠올리지만, 히틀러의 독일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 나치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뒤, 정부 부처는 히틀러의 신임을 얻기 위해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달렸다. 행정 부서는 관할 업무와 상관 없이 유대인을 잡느라 인력을 낭비했고, 국방군은 히틀러의 취향에 맞는 무기를 만드느라 자원을 낭비했다. 분명 비효율적이었지만, 누구도 비판하지 못했다. 나치당의 비효율성은 히틀러가 자살할 때까지 히틀러 자신과 독일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베를린에는 붉은 깃발이 걸렸고, 독일의 동쪽은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결말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나치당의 흥망사는 결속이 적절히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속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조직은 더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본말전도 현상을 겪고 있다. 결속을 위해서라며 직원들을 회식으로 끌고 다닌 결과, 기업은 퇴사하는 신입사원 탓에 인건비를 낭비하고 건강하지 않은 사원 탓에 생산성을 잃었다. 결속을 위해서라며 엄격하게 기수를 나눈 결과, 군대는 신병들을 각종 부조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간부의 권위와 전투력을 희생했다. 이처럼 결속이 과하면 조직은 힘을 잃는다. 나치당이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적절해야 도움이 된다. 결속도 마찬가지다. 친명계는 검찰 독재에 맞서서 당의 결속을 강화하고 싶어한다. 수박 논쟁은 이런 맥락에서 튀어나왔다. 친명계는 파란 민주당 자켓을 입고 빨간 국민의힘을 돕는 자들이 당을 안에서 무너뜨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 수박들을 몰아내면 당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준다. 결속이 과하게 중요해지면, 더 중요한 목적이 잊혀진다. 남국의 늪을 넘고 수박 농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더불어민주당은 나치당처럼 자멸할지도 모른다. 역사를 잊은 정당에게 성공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동학농민운동, 굳이 기념해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