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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혼유여행1

지구 반대편에 도착한 에리얼

by nara

독일 - 네덜란드 - 벨기에 - 영국 - 프랑스 - 스페인

무려 21박동안 유럽의 여섯나라 여행 일정을 잡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히키코모리 집순이였으니까. 독일에 살고 있는 오랜 친구가 잠시 한국에 와서 만났었다. "너도 할 수 있어. 처음이 걱정이 많지. 누구나 할 수 있게 돼."라는 말을..정말로 믿고 싶었다. 위험해보였지만 사실 배낭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걱정과 불안이 엄청나게 컸다. 나 진짜.. 혼자 잘 다닐 수 있을까?


아주 넉넉한 시간을 두고 공항에 도착해보니 비행기가 지연되었단다. 공항에 있는 심부름 로봇에게 밀크티를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마 이때부터 이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걸 미리 눈치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바깥 날씨는 너무도 따뜻하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탑승.

그동안 비행기를 많이 타봤으면서 한번도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덜컹 거리는 것조차 놀이기구 타듯 신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보니 무서움을 느낀 것이다. 비행기가 움직일 때마다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전에 하지도 않았을 걱정을 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진짜로 비행기를 무서워 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비행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에 신기했다.


비행기에 저장된 영화를 보았다. 양옆의 두 외국인이 있으니 낯설고 뻘쭘했는데 영화를 바라보니 괜찮아졌다. 엄청 큰 이슈있었던 인어공주였다. 두 외국인은 날 힘끔 힐끔 보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날 아이처럼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섭지만 신기한 세상 속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에리얼. 그리고 위험하다고 못 나가게 막아두는 에리얼의 아빠. 난 에리얼처럼 너무나도 걱정하는 우리 부모님께 짜증이 났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밖으로 나가면 자유로워질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에리얼처럼 말도 않고 나 하고 싶은대로, 살던 곳에서 떠나버린 것도 공통점이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친구와 함께 독일에만 있을 거라고 말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안이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왠지 내일은 몸살 걸릴거 같았다. 네이버 후기의 글루텐 뺀 음식이 맛있는 음식으로 바꿔서 나온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신청했다. 그러나 정말 정말 맛없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고있는 두 외국인 사이에서 나는 얼마 먹지도 못하고 자는 척했다. 첫날은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있는 친구집으로 가기로 했다. 뒤셀도르프에 가려면 뮌헨공항에 경유 해서 가야했다. 나는 살면서 외국인에게 단 한번도 말을 먼저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시간동안 비행기를 같이 타면서 외국인에게 말도 못 걸고 나오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나만의 싸움을 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독일의 뮌헨에 도착했다. 내리기 10분 전이었다. '너 꼭 해야돼! 반드시 해야돼! 할 수 있어! 시간이 얼마없어! 지금!! 당장!!' 이런 속마음 사투를 벌인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무거운 입술을 뗐다. 나의 개미같은 목소리를 그녀가 못 들을 거 같아서 살며시 어깨를 툭툭 쳤다.


"안녕하세요... 한국에는 무슨 일로 왔다 가시나요..?"


뜬끔없는 질문에 잠깐 당황한 기색을 표정을 잠깐 보이더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교환학생이라고 했다. 어느 학교로 교환학생 하셨는 지 물어봤으나 그런건 없다고 하고 설명을 덧붙였는데 역시나 못알아들었다.^^ 집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그녀 입장에서는 참으로 귀찮은 동양 외국인이다. 도시이름을 말해주고는 슬픈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해주었다. 그녀도 경유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그 비행기가 지금 취소되었다고 한다.


경유하기 위에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다 여기저기 어딘가 캔슬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불안했다. 내주변 한국인들은 갑자기 다들 어디론가 밖으로 나가버리곤 사라졌다. 환승 연결통로 기계 앞에 자꾸만 티켓 바코드가 안찍혀졌다. 내 티켓을 보여주고 직원한테 보여주니 서비스센터 앞에 서있으라고 알려주었다. 사람들 줄 끝에 대기하면서 뒤늦게 나도 내 비행기가 캔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의지할 거라곤 뒤셀도르프에 있는 친구와의 카톡 대화창이었다. 하지만 내 스스로 이곳에서 내가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어떻게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내 뒤에, 뒤에 남자 동양인이 보였다. 한국인인지 묻자 다행히도 한국분이었다.


"죄송하지만, 저 대신 번역해서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이도 직업도 아무것도 아는 사실이 없었다. 단지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베를린에서 워커홀릭 하기 위해 처음 비행기타고 온 어린친구였다. 그 아이도 경험이 없어서 힘들었을 텐데 내가 엄청나게 의지하며 본인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나 어깨가 더 무거웠을까.. 짧은 독일어 단어를 조금조금씩 내뱉으면서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들을 대신 전달해주었다.

"내가 타야할 비행기는 어떻게 되었고 어떻게 갈 수 있어요? 내 짐은 어디에 있어요?"

내 짐은 뒤셀도르프에 가있고 비행기는 다시 예약해야한다고 했다. 그 아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독일 직원은 모든 사람들한테 답해주기 정신없어서 번역기 돌릴 틈도 안주었다. 영어도 안쓰고 독일어로 속사포로 말하셨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위해 체크인 직원한테 갔다. 그러나 직원들은 시간이 늦었으니 오전 6시에 다시 오라는 말을 남기고선 떠났다. 내 앞에 있던 독일인들은 다 봐주고 불과 2,3명 안되는 우리를 두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안줄어드는 줄을 계속해서 기다렸는데 돌아온 건 그 말 뿐이라니.. 말도 안통해서 그들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속마음은 타들어갔다.


어떻게 잠을 잘지 호텔, 민박집을 알아보았다. 독일은 아예 그 친구에게 맡긴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혼자 이 깜깜한 밤 어딜 이동하기가 무서웠다. 가다가 잘못 내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 아이는 공항 안에 밤새 앉아있다가 아침 6시에 물어볼 거라고 했다. 사실 내일 다시 공항에 돌아와서 직원한테 물어보기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아이 옆에서 같이 노숙하기로 결정했다. 절대 내 옆을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선 말이다. 공항의 모든 직원들은 다 집에 가버리고 시간이 지나자 창가 옆에서 누워서 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캔슬되었다며 한국에 전화통화하는 다른 한국인도 엿보였다. 롱패딩을 이불 삼고 의자에 누웠다. 잠깐 눈을 깜았다. '이게 정말 현실이야?' 다시 눈을 뜨고 패딩을 젖히니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공항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불편해서 잠 한숨도 못잤었는데.. 이곳도 도저히 잠이 안온다.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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