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1일 차
2022년 6월. 2년여 만에 시립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입학한 둘째의 학교 적응도 끝났겠다 문득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쭉 해왔던 등산이 좋을까 오래전 그만두었던 요가를 시작할까 몇 주 고민을 했다. 결론이 안나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이들 수영 모습을 보다 결심이 섰다. 계획이랑은 거리가 먼 나는 이렇듯 즉흥적이다. 몇 주 고민한 시간이 민망하게도 어떤 결정은 참 우연히 그리고 갑자가 진행된다.
매달 22일에 있는 강좌 등록기간에 아이들 수업을 신청하며 어른 수업을 검색해 보았다. 모니터에 "3개월 단기특강"이 눈에 띈다. 가을부터 시작되는 초등학교 생존수영 덕분에 생긴 기간한정 수업이다. 어차피 기초반은 저것뿐이니 반을 고민할 것도 없다. 3개월이라. 마음은 더 편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운동의 시작은 장비 구입이다. 수영복 검색부터 시작했다. 수영복은 색도 모양도 다양했다. 래시가드만 입다 실내 수영복을 입으려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모델들 예시 화면은 예쁘지만 내게 대입했을 때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두 뼘 만한 수영복으로 내 몸을 모두 가리는 건 불가능하니 선택해야 했다. 팔을 가릴 것이냐 다리를 가릴 것이냐. 사뭇 진지했던 고민은 결국 다리를 가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허벅지까지 가려주는 3부 수영복을 검색하니 생각보다 수영복 디자인이 다양했다. 3만 원 대에서 시작한 나의 검색은 어느새 10만 원대 수영복까지 기웃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싼 수영복을 구입하면 아까운 마음에 오래 운동할 수 있을까 하는 유혹이 일었지만, 며칠 다니다 포기해 버리는 모습도 그려졌기에 결국 저렵한 수영복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뒤 수영복과 수모 그리고 수경이 도착했다.
운동을 배우는 건 실로 오랜만이기에 소풍 가듯 설렐 줄만 알았다. 그러나 바쁜 엄마의 삶은 두근거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밤에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아침은 아이들 등교시키기 바빴다. 첫날도 그랬다.
8시 30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허겁지겁 수영가방을 챙긴다. 수영장까지는 도보로 25분 정도 거리다. 운전을 했으면 편안했을 길을 터덜터덜 걷는다. 50분 걷고 50분 수영하면 살은 빠지겠지. 위로를 하니 운전 못하는 내가 조금은 용서가 된다.
수영장에 도착해 바코드를 찍고 입장한다. 데스크 직원에게 수영장은 처음이라 말을 꺼내니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온다. "일단 들어가세요. 주위에서 다 알려주실 거예요." 입장하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데스크 직원을 마냥 잡아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질문을 삼킨다. 그래. 일단 락커룸으로 들어가 보자.
락커룸은 더욱 복잡하다. 수업을 마친 사람들과 입장하려는 사람들 틈에서 눈치 컷 탈의를 한다. 수영복을 입고 샤워를 해야 하는지 씻고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지조차 몰라 두리번거리자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온다. "처음인가 보네! 일단 안에 가서 싹 씻어. 그다음에 수영복 입으면 돼요." 이름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초보자는 어디서든 티가나 게 마련인가 보다. 아주머니께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 샤워실로 들어간다.
코로나로 목욕탕 가본 지도 오래인 내게 샤워실의 풍경은 낯설다. 빈자리를 용케 차지하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꼼꼼히 비누칠을 하고 수영모를 쓴다. "아니지! 머리 감고 수모 쓰는 거예요~" 등 뒤로 넘어오는 말소리에 동작을 멈춘다. 들어가면 다 알게 될 거라는 데스크 직원의 설명이 이런 건가. 쓰려던 수모를 내려놓고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이제는 수영복을 입을 차례다. 젖은 몸에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수영복을 입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사이즈 큰 걸 사야 했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쯤 내 수영복이 쭉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백발의 할머니가 수영복을 당겨 올리고 있다. 억 소리와 함께 쫄쫄이 같은 수영복은 몸에 촥 입혀진다. 옆자리 아주머니는 말린 어깨끈을 풀어주며 어깨를 토닥여 주신다. 마치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 같다.
감사인사를 전하려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던 듯 샤워에 열중한다.
이미 정신이 반은 빠진 채 샤워실을 나간다. 수영장으로 나가는 길. 전신 거울이 나를 반긴다. 바지가 꽉 끼어 소시지 같아진 허벅지와 머릿발이라고는 한 톨도 허락지 않는 수모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을 벗겨진 눈썹을 보자니 이게 누군가 싶다. 애써 미화시켰던 셀카 속 내 모습은 사라진다.
아. 야속하여라. 수영장 그 진실의 거울이여.
거울 속 내 눈을 애써 피하며 수영장으로 입장한다. 과연 내 수영수업은 어찌 흘러갈 것인가. 나는 물에 뜰 수 있을 것인가. 5분 뒤도 예측하지 못하는 나의 운동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