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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Feb 20. 2023

수영- 수영장을 울리는 꼬르륵 소리

수영하는데도 통통함을 유지하는 비결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 부엌은 전쟁터다. 빨리 일어나서 천천히 준비했으면 됐을 아침시간이건만 5분만 10분만 더 자고자 꿈틀거렸던 나는 또 시간에 쫓기고 만다. 아이들이 대부분 스스로 하기에 손댈 게 없는데도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떤 연예인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 인사에 "바쁘지는 않았는데 분주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아. 이건 딱 내 이야기다. 차근차근해나갔으면 단정했을 나의 아침은 이처럼 (여전히) 실속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 인사소리가 들리면 전쟁 같은 등교 준비도 끝이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인사를 마지막으로 내 직립의 시간도 끝이 난다. 바빴던 엄마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 배웅 인사와 함께 바로 소파로 몸을 던진다. 아. 누워있는 건 정말이지 달콤한 일이다.


수영 가기 전에 청소기도 돌려놓고 설거지도 하고 싶다. 난장판이 된 집을 눈으로 훑으며 청소계획을 세우지만 지켜질 리 만무하다. 태초부터 게으른 나는 발라당 소파에 누워 흘러가는 시계만 안타까이 쳐다본다.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 수영장 가야 할 시간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수영복과 수건을 주섬주섬 챙길 때면 눈치 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밥을 챙겨 먹기에는 넉넉지 않은 시간이라 아이들이 남긴 반찬을 입에 털어넣는다. 한 입만 더 먹고 싶지만 누워 있는 대가를 치르려면 어서 자전거에 올라야 한다.




영법을 모두 배운 중급반부터는 흔히 말하는 "뺑뺑이"가 시작된다.  쉬지 않고 레일을 뺑뺑 돌며 수영하는 것인데 보통 자유형 2바퀴가 시작이다. 몸이 풀렸다 싶으면 IM(Individual medley)이라는 걸 한다. 개인혼영이라 불리는 IM은 네 가지 영법을 혼합하는 수영 종목 중 하나로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순으로 진행하기에 쉴 틈이 없다. 체력을 키우고 자세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꼭 필요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는 회원이 많을 정도로 힘든 연습이다.


IM 4바퀴 정도 돌고 나면 그분이 찾아오신다. 일명 밥선생이라 불리는 그분은 참으로 요란스럽다.

수영장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물 순환하는 소리, 발차기소리 선생님들 강습소리로 가득이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밥선생이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내보낸다. 민망함에 발차기를 더 해 보지만 꾸륵꾸륵 배고프다 난리인 소리를 감출 수는 없다. 울림 좋은 수영장에서 에코까지 얻은 밥선생. 어디다 내놔도 창피한 자다.


아. 눈치도 없이 누가 공복 유산소를 추천했는가.



수영장을 나서는 내 모습



수영을 다니며 내 오전은 더 분주해졌다. 아이들 아침식사를 차리고 학교를 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수영장 뺑뺑이를 돈다. 11시 반. 수영장을 나서면 말할 힘도 없어진다. 실제로 뱃가죽이 등에 붙지는 않았지만 체감하는 허기는 상상 이상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년 같다. 자전거 페달은 헛돌아가고 얼굴에 지친 기색이 완연하다.

허기의 무서움을 느끼고 나서는 자전거 바구니에 간식 꾸러미가 등장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자전거 바구니를 뒤적거려 입안에 초콜릿 한 조각을 털어 넣는다. 작은 초콜릿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입속은 찌릿하고 비워진 위장이 꿀렁이며 당을 반긴다. 10분 라이딩할 힘을 얻은 나는 이때다 싶어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다.


운동을 하지 않았던 때는 식사를 대충 차려먹었다. 이도 귀찮아 아침점심 건너뛰고 커피 몇 잔으로 퉁치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으로 한껏 배고파진 나는 찌개까지 끓여 (나를 위해) 거하게 한 상 차려 먹는다. 아이들 주느라 내입에 들어가지 않았던 과일까지 챙겨 먹고 두둑해진 배를 가지고 소파에 앉는다.

여기까지가 한 세트. 허기까지 달래 놓아야 오늘 운동이 비로소 끝이 난다.


칼로리 소모가 심한 운동인데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급반으로 갈수록 요령이 붙어 운동은 더욱 쉬워지는데 입맛은 쉬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고개도 못 들 만큼 힘들게 운동하는데 몸은 그대로인 게 아쉽지만 어쩌겠나.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더 찌지는 않았다는 자신감으로 날 위로해 본다.




수영장에서 나온 첫째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돈다. 나는 젖은 머리를 귀에 꽂아주며 입속에 초콜릿 조각을 넣어 준다. 왜 짜증이 난 줄도 모르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첫째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알지. 그 마음 알지.' 우리는 초콜릿 마법이 끝나기 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입 짧은 첫째는 수영한 날만큼은 저녁을 잘 먹는다. 세월아 네월아 밥알을 세기만 하는 말라깽이 첫째는 수영만 하면 허겁지겁 10분도 안 돼서 밥그릇을 비워낸다.


운동 많이 하고 저녁 조금 더 먹었다고 통통해 지길 바라는 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맛나게 한 그릇 비워냈으니 우리 마른 첫째. 1kg라도 찌기를.


많이 먹고 빠지길 바라는 고약한 심보를 가졌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누워만 있던 내가 일주일 내내 운동하는데 그 정성을 봐서라도 1kg라도 빠지기를.


각자에게 1kg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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