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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r 04. 2022

나만의 비밀


병원 생활은 심심했지만 즐거웠다. 간혹 무서운 꿈을 꾸긴 했지만 일어나면 금세 기억에서 사라졌다. 기적적으로 장애도 나를 피해 갔다. 하지만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트라우마


나는 모든 탈것들에 대해 공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오토바이 소리였다. 저 멀리서 나는 오토바이 시동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나가는 자전거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도망갈 수 없는 휠체어 위에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울었다. 엄마는 당황했다. 나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섭다 느껴지면 모든 차 소리가 귀에 꽂혔다. 나를 향해 차들이 달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안심하려 건넸던 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산너머 산. 장기간 햇빛을 보지 못했던 내 낯빛은 붉었다 푸르렀다 하얗게 질렸다 반복했다. 모든 일에 급한 엄마는 다행히 내 문제에 인내심을 가져주었다.

 1년이 지나자 내 증상은 서서히 호전되었다. 소리에 먼저 적응했고 시각이 그다음이었다. 내 호기심은 외출을 원했고 시간은 내 트라우마를 없애주듯 싶었다.




30년이 지난 후. 나는 서울에서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집 앞으로 지하철, 버스가 수시로 다녔던 서울과 울산은 달랐다. 게다가 우리는 네 식구가 되어있었다. 결혼 5년 만에 차를 장만했다. 남편은 첫차에 들떴다. 주말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나는 조수석에서 남몰래 지옥을 오갔다. 앞자리는 무서움 투성이었다. 초보운전인 남편 핑계대기에도 민망하게 덜덜 떨었다. 중앙선을 넘어 차가 덮칠 것 같았다. 끼어드는 차만 봐도 숨이 막혔다. 남편에게 신경 쓰이고 싶지 않아 꾹꾹 참았지만 가끔 소리가 세어나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유전으로 받은 지독한 멀미가 잊힐 만큼 유리창 너머 세상은 너무 무서웠다. 손잡이를 어찌나 세게 붙잡았는지 차에서 내리면 손발이 저릿했다.


영원할 것 같이 굴던 공포는 시간이라는 약을 먹고 조금씩 흐릿해졌다. 천천히 조금씩 긴장은 풀렸고, 1년이 지나자 드디어 편안해졌다. 한 발짝 더 나가고 싶어진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운전!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결심이 서자 진행은 빨랐다. 1시간 반씩 10번의 운전연수를 받기로 했다. 예상대로 내 운동신경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방향감각도 엉망이고 순발력도 떨어졌다. 아침에 연수를 받고 나면 진이 빠져 낮잠에 들었다. 밤에는 유튜브로 운전연수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럼에도 걱정은 없어지지 않고 꿈으로 나타나 밤잠을 방해했다. 어지러운 마음 중 제일 발목을 잡는 건 "무서움"이었다. 내가 사람을 치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은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아 뽑힐 기미가 안보였다. 나도 잊고 있었던 8살 교통사고가 불쑥 떠올랐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는 행위. 내게 운전은 너무 큰 책임감을 필요로 했다. 10번의 연수가 끝나고 나는 기술적으로 많은걸 익혔다. 주차는 쉬워졌고 끼어드는 요령도 생겼다. 그래도 끝끝내  이 무서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연수 2년이 지난 지금. 난 30km 제한도로만 골라 다닌다. 1차선이라 추월할 수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집에서 이어져 있는 이 도로에 대학병원과 백화점 도서관이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많아 뒤에서 빵빵 거릴 수 없는 이 도로는 내게 안심이다.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이 길을 신중하고 조심히 운전한다.




느리지만 나는 내 트라우마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 이는 엄마도 아빠도 남편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다.

30년 전, 3개월뿐인 입원기간이었다. 나조차도 잊고 살았다 생각했던 기억은 뜻밖의 순간에 나타났다. "나는 이렇게 이겨냈어요!" 말해주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건넬 위로의 말이 내게는 없다. 그저 내게 왔던 작은 사건을 조금씩 이겨내며 살 뿐이다.


모두 즐거워 보이는 세상이다. 하지만 상처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픔은 우연히 찾아든다. 불공평하다 불평하기엔 아픔에 대한 이유도 따져볼 대상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상처와 공존하기 위해 힘껏 살아낼 뿐.

나는 과연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을까? 결과는 모르겠다. 나는 끝까지 운전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돼서도 오토바이 소리에 화들짝 놀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겠다. 무섭지만 조금씩 도전해 보려 한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버틸 것이다. 그리고 이게 삶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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