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자매 빗질의 역사
10년 전. 시작은 첫째가 얇디얇은 배넷머리를 가진 아기 때였다. 아기띠에 안겨있는 딸을 보고 지나가던 분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아들이구먼. 고놈 참 잘생겼다." 분홍색 옷과 분홍색 신으로는 부족했나 싶어 리본핀을 준비했다.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얇은 머리를 겨우 모아 쥐고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가는 얇은 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아이 손바닥만 한 리본을 보자 사람들은 더 이상 아들 타령을 하지 않았다.
까까머리를 지나 더벅머리가 된 돌쯤부터는 머리묶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양쪽으로 나눠 묶고 뒷머리를 하나로 묶으면 아이는 금세 단정해졌다.
기어가려는 아이의 인내심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줌도 안 되는 머리칼을 묶고 방울끈으로 고정시키려면 스피드가 필수였다. 다리에 끼고 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두고 묶고 가르고 땋았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딸머리는 더욱 화려해졌다. 친구들 머리를 보고 왔는지 스타일링 요구를 하기도 했다. "두 갈래로 묶어 땋아주세요. 엘사 머리처럼 한 갈래로 땋아 주세요. 양쪽으로 묶어 도깨비 머리처럼 땋아 올려주세요." 바라는 건 머리 스타일뿐이 아니었다. 아침 기분과 옷색에 따라 머릿방울도 직접 골라야 했다. 무지개색으로 염색된 인조모로 된 핀부터 왕관 삔, 달랑거리는 귀걸이가 달린 머리띠까지 악세사리함도 다양해졌다.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써 묶은 고무줄을 훽하고 빼버리기도 했다. 화가 울컥 났지만 요구를 거부했을 시 편안한 등원은 물 건너가기에 삐져나온 머리를 다시 빗으며 마음수양을 했다.
둘째 딸이 태어나고 머리묶기는 일상이 되었다. 둘째는 뱃속에서부터 까만 머리를 길어 나왔다. 한번 키워봤다고 둘째의 빗질은 빨랐다. 떡두꺼비 같이 태어난 둘째는 능숙한 엄마손길에 딸로 변화했다.
나는 외국 유튜버를 구독까지 하며 실력을 늘려갔다. 꼬아 묶고 교차시켜 별모양을 만들거나 고무줄을 10개씩 묶어 작은 볼륨을 준다던가 하는 것들. 나름 진지했던 나는 열심히 실력을 닦았고 아이들은 선녀 같은 머리로 놀이터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늘어난 실력으로 바쁜 외출준비도 문제없었다. 아기상어노래 한곡이 끝나기도 전에 자매의 머리를 동시에 해치웠다. 둥지 틀 것 같은 까치집 머리가 몇 분 만에 단정히 바뀌는 걸 보고 아들엄마들은 혀를 내둘렀다.
아이들은 한 해 한 해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찰랑이는 머리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두 딸의 긴 머리를 꼼꼼히 감기고 빗어 말리는 건 꽤나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비행기 만들 때 쓴다는 모터가 달린 드라이기를 산 것도 이쯤이었다.
자기 전 고이 빗어뒀던 머리칼은 아침이면 꼬아놓은 것처럼 엉키곤 했다. 머리를 풀어내려 빗질을 하면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다. 한날은 징징거리는 목소리에 귀가 따가워 생각나는 대로 동시를 지어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소리치지 않았고, 머리 잡아먹는 빗 이야기는 그 후로 오래 사랑받는 시가 되었다.
오도독 우두둑
앙칼진 빗이
엉킨 머리를 잡아먹는다.
까득 까드득
잔뜩 먹고 나니
싸악 싹
고운 머릿결만
남았구나.
배부른 빗은 쉬렴
내일 까치집 짓고 나면
우리 다시 만나자.
파란 망사가 발목까지 오는 엘사드레스와 분홍색 바탕 가득 공주님이 그려져 있던 시크릿쥬쥬 옷을 졸업하고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분식집이 익숙해질 무렵 아이는 "이제 아기머리는 그만이에요~" 하며 양갈래머리 중단선언을 했다. 좋아했던 토끼가 달린 머릿방울도 고양이귀가 달린 머리띠도 아이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화려했던 삔통에 검은색 투박한 똑딱이 핀이 등장한다.
내 실력은 여전한데 발휘할 곳이 사라졌다. 수요 없는 공급. 다리에 한 명씩 끼고 꼬리빗으로 가르마 타며 분주했던 아침 풍경이 달라진다. 선배맘들에게 들으니 고학년이 되면 옷장이 전부 까매진다고 한다. 듣고 나니 인형놀이 하듯 입혔던 원피스에 먼지가 쌓여가는 것이 생각난다. 머리핀도 옷도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자매들. 분홍옷 노랑옷 큼지막한 리본핀의 시대는 이렇게 막이 내린다.
문득 10년 동안 두 딸의 머리를 매만지느라 잊었던 내 머리카락이 생각난다. 귀찮아 한쪽으로만 가르마를 탔더니 길이 들어 바뀌지도 않는 내 머리 안의 하얀 고속도로. 아이들 머리는 실컷 해봤으니 이제 관심을 내게 돌려야겠다.
10년의 빗질의 역사. 이제 작별인사를 해본다.
잘 가렴 보들보들했던 머리칼아. 안녕 귀여웠던 양갈래 삐삐머리야.